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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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지미를 싫어한다. 몇 년 전 어느 영화제에 시상하러 나와선 “제목이 좀...흠...그러네요. ‘개 같은 날의 오후’...”를 부끄럽게 외치던 그녀가 싫다. 그러면서 나이가 마치 억겁인 듯 몇 겹으로 덮은 그녀의 화장도 미웠다. 아침마당에 등장하는 엄앵란처럼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이들이 좋았다. 그래서 당대의 이효리나 전지현도 종래에는 전원주나 선우용녀처럼 되길 바랐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글루코사민과 오메가 쓰리와 함께 로션과 이것저것을 빼놓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 바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이기 전에, 노인이기 전에, 아내, 며느리, 그 어느 것 이전에 여성이고 인간인 것을. 그것이 허위와 가식과 위선이라 해도, 아니 허위와 가식과 위선 그 자체가 사람들이 누려야 할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박완서의 시선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만큼 시건방떠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나 어울리는 말일 테다. 다만 지하철에서 빈 자리만 보면 그 rpm을 급속하게 올리는, 그러나 다른 일에는 시동조차 잘 걸리지 않는 낡은 포니 같은 그네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젊은’ 나에게 던져진 몫일 테다.

이 이야기들이 노친네들이 빛바랜 흑백사진을 바라보는 듯한 과거의 회상, 혹은 회귀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루하고 질척거리든 어쩌든 그런 시간을 인고하고 살아온 ‘지금, 여기’ 있는 노인들의 문제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하는 신경림의 시처럼 늙었다고 해서 성욕과 물욕과 시기와 위선이 없겠는가.

물론 박완서 선생이 힘주어 두 번이나 말했듯,

“알아듣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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