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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머니 -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 한국 VC 이야기
러닝메이트 지음, 이기문 엮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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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경제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책은 읽어도 읽어도 어렵기만 하다. 아무래도 내 적성과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련 책을 멀리하면 경제와 친해질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책 편식을 방지할 겸, 공부할 겸 하여 펼쳐본 책이 바로 <뉴 머니>다. 이 책은 VC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VC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머리가 핑 돌았다. 모르는 단어였다.
다행히 러닝메이트 분들이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생소한 단어들을 정리해주셨는데, VC는 벤처캐피탈리스트나 벤처업계를 의미하는 약어라고 한다. 사실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저 두 용어 역시 나에게는 도통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은 앞으로 알아갈 것 역시 많아서 좋은 것 같긴 하다. 이 책은 벤처캐피탈 분야에 영 문외한인 나에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프롤로그에서 러닝메이트 멤버 중 한 명이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벤처투자 개론서를 자처하는 책은 아니다. 실무에 대한 노하우나 투자 전략이 적혀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같은 사람이 읽기에 좋았다. 벤처라는 기본 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실무니 전략이니 아무리 얘기해봐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이 책은 벤처투자 산업의 현 상황과 전망, 그 기회와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나역시 부담과 걱정을 내려놓고 '벤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기껏해야 '유니콘'정도의 용어만 알고 있던 내가 조금은 벤처 산업에 대해 알게 된 느낌이 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벤처캐피탈'이라는 명칭은 벤처투자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를 지칭한다. 이는 비상장 초기 기업에 투자해 고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성공시 큰 수익을 노리는 자본이고, 변혁을 일으킬 벤처기업을 발굴 및 지원하는 금융기관이다. 이런 모습은 꽤 모험적인데, 이 모험은 자본주의가 도래한 이래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대항해시대를 떠올려보면 이 '모험'이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대략적으로 감이 온다.
현재는 콜럼버스가 바다를 누리던 대항해시대보다 더한 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모험과 자본주의가 그 결을 같이 한다면, 모험을 자처하는 '벤처산업'이 갈수록 성장할 것임은 자명하다. 실제로 2017년 기준 한국의 벤처투자펀드 규모는 20조 원을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1년에 처음 시장 규모 10조 원을 돌파한 이래 7년 만에 두 배 성장한 수치다. 벤처캐피탈협회 통계에 빠진 해외 펀드, 은행 등 직접투자를 고려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투자 산업 성장은 벤처캐피탈 회사들의 호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굉장한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벤처투자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숫자 자체가 적은데다 그들 대부분이 자영업자처럼 일을 하니 산업에 대한 정보나 접근성이 떨어졌던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벤처투자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은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벤처투자가 무엇인지 몰랐던 사람들, 관심은 있으나 정보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 나처럼 막연히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가 <뉴 머니>를 통해 벤처투자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 어쩌면 벤처기업은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라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 머니>를 통해 벤처기업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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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이야기 -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사이먼 하비 지음, 김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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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밀수라는 단어를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몰래 물건을 사들여 오거나 내다 파는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인 매매 행위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수는 단순히 법적인 차원을 떠나 문명을 전파하고 세계 패권 구도를 바꾸는 등 역사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공민왕 시절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밀반입한 문익점이라는 좋은 예가 있고, 중국은 마약 밀수가 시발점이 된 아편 전쟁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가하면, 밀수는 의외로 우리 일상에 깊숙히 침투해있기도 하다. 간단한 예로 세관 신고가 있다. 대한민국 현행법은 해외여행 시 미국 달러화 기준 600달러 이상을 구매하고도 세관에 신고하지 않는 것을 밀수 행위라 규정한다. 하지만 간혹 세관에 걸리지 않기 위해 여행지에서 구입한 물품의 택을 때거나, 아예 장착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밀수를 하고 있다는 의식도, 죄책감도 그리 크지 않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밀수다.

그런데 밀수는 손에 잡히는 물품을 몰래 들여오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상과 문화 또한 유서 깊은 밀수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는데, 이는 왕정 체제를 유지하려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선 위험한 사상으로 여겨졌기에 밀수로 전파되었다. 스위스 등 계몽주의 사상이 허용된 나라에서 책의 형태로 밀수되어 전유럽에 퍼졌다. 밀수가 혁명의 요소가 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밀수는 유물을 빼돌림으로써 이루어진다. 지금은 중대한 처벌을 받을 행위이지만, 유물 밀수가 성행하던 시기에는 한 국가의 유물이 그 국가만의 재산이고,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며, 약탈 행위는 문화적 맥락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오늘날의 이론이 통하지 않았다. 되려 세계 문화 유산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의 원칙이 더 넓게 적용됐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약탈품을 뺀다면 전시장이 텅 비어버릴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당시 약탈(밀수)당한 문화유산들은 여전히 타 국가의 박물관에 갇혀있다. 책에서는 크메르 제국의 유적지 앙코르와트의 목 잘린 조각상을 예로 들었는데, 그곳에서 그 조각상들을 직접 본 사람으로서 참으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어딘가에 어색하게 놓여있을 얼굴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는 앙코르와트인데... 정작 약탈 행위를 한 이들이 범죄자로 몰렸던 사례는 거의 없으며, 박물관가 경매장, 수집가들은 밀수 사업과 조심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책에서는 다른 민족의 유물을 가져다 쌓아두려는 이유도 분석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과시욕'이다. 예술품은 그 국가의 사회적 정체성을 만든다. 그것이 약탈품이어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은 그 박물관의 명성을 높여줄뿐만 아니라 그 사회가 문화적인 사회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유물을 약탈당한 국가의 상실감은 뒤로 밀려난다.


밀수의 적은 단연 정부다. 밀수를 규제하는 일이 정부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가 밀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 역설적이다. 규제가 없으면 밀수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스운 일은 밀수를 규제한 장본인인 정부가 밀수꾼의 후원자, 혹은 주체가 된 역사가 유구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서 은밀하게 밀수를 지원한 나라로는 크게 잉글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있다. 모두 대항해시대(15~16세기)를 주름잡았던 국가다. 항해와 밀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니 이 국가들이 밀수를 지원한 것도, 대항해시대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책에는 밀수의 다양한 형태와 그 행위에 관련된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읽다보면 밀수 문화의 발전 과정, 밀수의 양상 변화와 제국의 건설, 밀수가 정치적, 경제적 권력과 범위를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된 배경 등을 알게 된다. 밀수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도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 듯하다.
밀수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선 밀수가 일어나고 있다. 그 밀수가 또 어떻게 세상을 바꾸어 놓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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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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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0일 바레인에서 열린 제 42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산사 7곳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서 우리는 '대한민국은 산사의 나라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음을 공인받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전국 어디서든 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최첨단 도시를 자처하는 서울도 고개만 들면 산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나라를 '산사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산사의 나라다!"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됨에 따라 산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데에 힘써온 유홍준 교수는 그에 맞춰 산사 순례에 길라잡이가 되는 책을 펼쳐냈다. 이 책에는 그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소개한 산사 20여곳이 모여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대흥사, 부석사, 선암사, 봉정사에 더하여 등재되지 않은 뛰어난 명찰들도 책 속에 자리한다. 도입부에는 산사의 유래와 자리앉음새, 건물 배치, 구조 등을 소개하여 책 전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 우리 산사의 '뛰어난 보편적 가치'(OUV)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1천 년 전에 창건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한국 불교의 독특한 사찰 공간이자 수행 전통이 유지되고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 바로 산사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쟁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주 부석사이다.(P.24)

 

내소사는 근래에 들어와 손을 많이 본 절집이다. 그러나 손을 대면서도 여느 절집처럼
화려함이나 요사스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내소사의 원형을 다치지 않게끔 단정한 가운데
소탈한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그것 또한 끝끝내 지켜오는 소중한 아름다움의
실천인 것이다.(P.161)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산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여지껏 산사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사는 대개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여 순례라는 개념조차 떠올려본 적이 없다. 허나 유홍준 교수의 생생한 묘사와 그림을 그리는 듯한 비유, 산사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각 산사가 지닌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날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아름다운 산사가 이렇게나 많은데.

 

 

 

위의 두 사진은 각각 제비원 석불과 천불전 창살무늬로, 저자의 설명을 곁들여서 보면 그 멋을 한층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는 사진 자료도 많이 수록해두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저자의 사색이 담긴 문장으로 절경을 그려볼 수도, 선명한 사진 자료로 정확한 이미지를 기억할 수도 있다. 산사의 전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 두 눈에 직접 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절로 하게 된다.

 

 

 

 

그리하여 표훈사에 당도했을 때 자연히 지세부터 살펴보았는데, 깊은 산 깊은 골짜기에
이렇게 넓은 터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절집이 안고 있는 품이 크고 기댄 등은
두텁기 그지없으니, 만약 살아남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스럽다고 할 밝은 기상의
터전이었다.(P.381)


 

부석사, 운문사 등 남한에 자리한 산사의 아름다움도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특히나 좋았던 건 북한에 있는 산사 두 곳이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우리의 것이면서도 우리의 것이 아닌 묘향산 보현사와 금강산 표훈사라는 미지의 산사. 나는 두 산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 유홍준 교수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검색만 하면 자료가 쏟아지는 세상이라지만, 북한의 산사에 직접 다녀온 사람의 생생한 감상은 정말이지 희소하다. 사진에 미처 다 담기지 않은 경치나 분위기를 저자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보현사와 표훈사 역시 더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저자는 산사의 세계유산 등재로 또 하나의 강력한 '한국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이 산사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더 높이 인식하게 되고 민족적 자부심과 함께 이를 일상 속에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맞았음을 자각시켜 준다. 바야흐로 하늘은 드높고 말은 살찌는 독서의 계절 9월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를 읽고 산사의 미학을 배워보자. 맑고 쾌청한 가을 하늘 아래 고즈넉한 산사로 당장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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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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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승연 작가님을 알게 된 건 Jtbc의 비정상회담 덕이다. 작가님은 그 프로그램에 재차 출연할 정도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외국어에 능통할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전하는 능력까지 뛰어났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나역시 조승연 작가님을 보며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 외국어에도,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내가 조승연 작가님을 좋아하게 된 건 필연이었다. 작가님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마침 작가님의 신간을 곧바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무심하고 까칠한 프랑스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사람들은 무언가가 결핍되었다고 느낄수록 그 무언가를 갈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화제의 단어가 된 이유를 현재의 한국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을 찾는 우리들. <시크:하다>는 작가님이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으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를 자처한다. 이 안에는 행복에 관한 프랑스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



#편안함에 관한 새로운 관점


프랑스는 결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하면 떠오르는 나라 중 한 곳이다. 그러나 프랑스인은 새것보다는 익숙한 것, 예측 가능한 것을 선호한다. 부모의 옷이나 가구, 집을 물려받아 사용하는 생활이 그들에겐 자연스럽다. 낡은 거울에서 멋을 찾고, 단칸방에 모여 와인을 마시고 기타를 친다.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TGV 개통에 결사반대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편리함이 곧 편안함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사람은 새롭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스마트폰은 즉각적인 연락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인 동시에 자유의 족쇄가 된다. 쏟아지는 전자기기와 스마트폰 어플은 편리하지만 편안하진 못하다. 예전 제품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내다버린 세탁기, 자동차 등은 지구를 오염시킨다. 미국의 정신의학과 교수 마크 쉔은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우리는 갈수록 불편해진다"고 했다. 이런 우리는 프랑스인이 편안함을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메멘토 모리


나의 죽음은 우주의 질서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문구다. 평소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프랑스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는 라틴 문화권에 속하고, 라틴족은 로마시대부터 죽음을 어둡고 음산한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 같은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라틴 철학의 중심 논제인 삶과 죽음을 주제로 끊임없이 토론한다. 그러니 그에 대한 고찰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찰은 죽음과 늙음, 더불어 삶 자체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준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아 아름답다는 '메멘토 모리'는 파리 전역을 감싸고 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


세계 3대 미식의 나라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는 요리가 곧 학문이자 종교다. 그들은 미술품을 고르는 안목이나 좋은 와인을 골라내는 후각 등 세련되고 멋진 것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을 '미각이 있다'고 평한다. 또한 그들은 입맛 까다로운 사람을 존중하고, 봉주르보다 보나페티('입맛이 돌기를 바랍니다'라는 뜻)라는 인삿말을 중요하게 여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는 프랑스 요리사 브리야 사바랭의 선언은 이미 유명하다. 프랑스인들에게 미각은 사람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인 것이다.



#'차가운 우정'의 따뜻함


한국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 원인은 인간관계가 아닐까 한다. 인맥도 능력이라는 말이 판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때문에 싫어도 좋은 척하며 억지 인연을 이어가곤 한다. 진정한 친구가 없는 것 같다며 허무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프랑스인의 친구 개념을 받아들여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프랑스인은 재벌이 아니고서야 인맥 스트레스를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구분도 뚜렷하다. 그들에겐 아미와 코펭 두 친구가 있다. 아미는 진정한 친구, 코펭은 그 전 단계 혹은 깊은 공감대가 없는 친구를 의미한다. 이보다 더 먼 거리에 있는 친구 관계도 있다. 프랑스인은 아미, 즉 진정한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내키지 않는 술자리에 가거나 인맥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럴 시간에 진짜 마음에 맞는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인의 인간관계는 폭이 좁을지언정 스트레스가 훨씬 적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태도를 지향했으면 좋겠다.



#성공할 것인가, 즐겁게 살 것인가


프랑스라고 학업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은 학업을 통한 성공만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성공의 기준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어느 대학을 나와서 어떤 기업에서 일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성공의 기준이 아니다. 우리나라나 미국에선 "저 사람은 뭘 하는 분이지?"라고 물으면 대부분 그의 직업을 말하지만 프랑스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변호사로 일해서 번 돈으로 여행 블로그를 하지."
"슈퍼마켓 장사로 돈 벌어서 음악도 배우고 공연도 다니지."
프랑스인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행복으로 보지 않는다. 일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실리콘 밸리의 구호는 프랑스에선 비웃음만 살 것이다. 언젠가 프랑스 기업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이 야근을 자처하자, 그 기업 사람들이 '우리의 권리를 뺏으려 하지 마라'며 야근을 하지 못하게 나무랐다는 일화를 본 적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사회 변화가 빨랐던 프랑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온 프랑스. 자유와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떤 목표의 성취보다는 순간의 즐거움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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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배운 것을 보며 작가님은 언어 이해력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능력도 탁월하다고 느꼈다. 하나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이 책은 프랑스 사람들이 옳고 우리는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와 다른 사고 방식, 생활상이 있음을 알려주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게 해준다. 세상에는 많은 나라와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는 각자 장단점이 존재한다. 우리의 단점은 버리고 상대의 장점을 배워야 발전이 있다.

시크해서 행복한 프랑스 사람들. 나도 조금은 프랑스인처럼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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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사회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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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뉴스뿐만 아니라 의도를 담은 가짜 뉴스까지 무분별하게 생산, 유포되는, 바야흐로 '탈진실(post-truth)'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의 내용은 모르지만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진실과 가짜 진실, 즉 거짓을 구별하기 어려워진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진실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 확립되는지 알아야 한다.

 

<진실사회>는 진실의 탈을 쓴 거짓 진실을 구분하는 사고법을 길러주는 책이다. 저자 줄리언 바지니는 가디언으로부터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회의 수호자'라는 평을 받는 영국의 철학자, 저술가, 칼럼니스트로, 철학 계간지 <필로소퍼스매거진(Philosopher's Magazine)>의 편집장 겸 발행인이기도 하다. "작은 생각이 커다란 통찰력을 키운다"는 슬로건으로 낙태, 젠더, 전쟁뿐만 아니라 종교 이성, 실존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줄리언 바지니. 그의 철학은 이 책 <진실사회>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마주했을 간단한 사회적 문제들을 보다 더 심오하고 냉정하게 꿰뚫어본다.

 

 

-종교적 진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진정한 신의 계시라 믿으며, 서로의 경전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거짓이라 판단하는 코란은 이슬람교도들에겐 진실이다. 마찬가지로 신약성서는 이슬람교도들에겐 거짓이지만 기독교인들에겐 진실이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계시의 존재를 최소한 하나는 믿고 있다. 비단 종교에서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이 역설은 나로 하여금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나만이 맞다고 생각하는 아둔함을 돌이켜보게 만들었다. 내가 거짓이라고 믿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진실일 수가 있고, 마찬가지로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거짓일 수 있다.

 

 

-도덕적 진실

 

사실이 변하면 생각뿐 아니라 마음 또한 바뀐다. 가장 공감가는 문장이다. 지금껏 사람들은 "인간 이외의 존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인식을 사실로 여기고 온갖 잔인한 행동들을 벌여왔다. 어쩌면 내가 그를 아울러 '잔인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조차 사실이 변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서 산채로 낙지를 불판에 올리거나 게의 다리를 자르는 행동을 비난하는 글을 보기도 했는데, 이 역시 인간이 아닌 존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과거의 사실 아닌 사실이 거짓으로 판명났기에 화두에 오른 것일 수도 있다. 여전히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사실이라 믿는다면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을 터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는 식의 도덕적 견해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p.103) 사실이 변하면 생각과 마음이 바뀐다는 말은 곧 사실에는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속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속는 일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진실의 품질을 검사하고 진정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은 어렵고 복잡할지언정 결코 의미 없진 않다. "진실은 힘이 세다"는 명제는 결국 진실을 믿는 사람이 많아야 진정한 명제가 된다. 진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책 <진실사회>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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