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 주자학에서 본 선악의 실체성 AKS 인문총서 35
김철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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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대한 다양한 사유의 결들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주희는 "선악이 모두 리이지만, 악한 리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선은 본래 성이지만, 악 또한 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표현들을 통해 악을 설명하였다. 이 또한 서로 모순되는 두 방향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역설적 표현들이다. 주희는 왜 모순된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보는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두 가지 중의 하나는 놓치고 시작하는 셈이 된다. 주희의 마음속 한편에는 리를 통해 악까지도 설명하고픈 학문적 욕망이, 다른 한편에는 악의 실체화를 경계하는 실천적ㆍ교육적 욕망이 함께 있었기에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모순대립인 것 같은 두 방향이 실은 같은 방향을 함께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 <8장 악의 위상: 악한 리도 있는가> 중에서 - P224

악은 어떤 표준을 기준으로 지나침, 뒤집어짐, 한쪽으로 치우침, 어긋남, 빼앗김, 멀어짐, 가로막힘이 발생한 상태이다. 표준이 없다면 지나치거나 어긋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표준이 있고 악이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뒤틀림이라면 현실의 악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기질이 매우 근본적이고 은미한 순간부터 우리의 의지를 악으로 향하게 유혹한다 해도[幾有善惡], 악은 ‘실체(substance)’, ‘고유명사’, ‘대상이 지닌 고유한 속성’, ‘이미 존재하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악은 악으로부터 정의될 수 없다. 악은 선으로부터 정의될 뿐이다.
- <9장 악의 의미와 존재 이유(리)> 중에서 - P231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과 유사하게 가해자가 악마적으로 묘사된 사건으로 ‘n번방 사건’이 있다. n번방 사건은 2019년 2월경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불법 음란물을 생성하고 유포했던 디지털 성범죄사건이다. 이에 대한 기사 대부분이 부산 여중생 사건과 마찬가지로 처벌강화를 외쳤다. 사람들은 매스컴에 나오는 악마적 존재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스스로를 악마와는 거리가 있는 선한 존재로 여기면서 말이다. 이러한 악마화는 감정의 배설구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사회를 개선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악으로부터 선을 정의하는 손쉬운 가치판단에서 벗어나야하는 이유이다.
- <결언 주희 선악론의 의미> 중에서 - P303

주희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선악은 선으로부터 정의되어야 하는데 비해, 노자와 니체에게서 선악은 도덕적 선으로부터 정의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선은 진정한 선이 될 수 없는 자의식의 산물(노자)이거나 원한 의식의 산물(니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상적 판단의 오류여부를 떠나 선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악을 탄생시키는 행위라고 본다. 유학이나 신학에서 악을 선의 결핍이라고 정의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악을 가볍게 만들고 악을 윤리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적 기준을 중심에 두는 한 도덕이란 이름의 성스러운 폭력은 불가피하다. 이들이 절대선의 관념을 비판하는 이유이다.
- <결언 주희 선악론의 의미> 중에서 - P306

반면 우리가 악을 선으로부터 정의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선이 놓여 있다는 가정 위에 서게 된다. 이것은 악을 선의 품 안에 품는 것이다. 악을 선의 영역 안에 둔다면 선의 완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때라야 비로소 악의 형이상학적 무게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비단 형이상학적 호기심에서 나온 피상적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악마화는 줄어들게 될 것이고, 누구나 언제든 교화 가능한 존재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 하품자는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한유의 입장, 커다란 악은 그 근원이 별개로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제자의 물음, 부시의 악의 축 발언, 그리고 앞서 보았던 학교폭력 관련 기사와 댓글들이 ‘악의 실체화’로 향하고 있다면,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희의 입장은 악을 인간의 책임 안에 두겠다는 ‘악의 윤리화’로 향한다.
- <결언 주희 선악론의 의미> 중에서 - P312

주희는 어느 제자처럼, 마니교처럼, 부시나 트럼프처럼, 우리사회의 뉴스기사와 댓글들처럼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외적이고 실체적인 악에 대한 투쟁에 있다고 보지 않고, 경(敬)이나 격물(格物)을 통해 우리 내면의 악을 알아차리고 선을 깨닫는 과정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누구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질의 간섭으로 우리의 마음은 매순간 이기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마치 훈제된 고기에서 냄새를 완전히 빼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한순간 나와 타자의 연결성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현실 속에서 우리의 욕망은 이내 다시 꿈틀댈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이로 인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악한 사람만이 아니라 선한 사람 또한 예외적이다. 악은 평범하다. 기질지성을 지닌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악에 물들 수 있고, 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매번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과정 속에서 충실성 또는 계속함(誠)의 윤리가 필요하다.
- <결언 주희 선악론의 의미> 중에서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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