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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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느낀 점이라면

한 인간의 상실의 연속, 그로부터 오는 허무함, 그리고 그로인해 생긴 냉소적인 시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소설에선 늘 있어서 그것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여겼던 무언가가 갑자기 없어져 버리는, 그래서 그 때문에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련함, 그리움, 그리고 슬픔이 굉장히 어둡고 침침하게 잘 나타나 있었다. 젊은 나이, 뭔가를 통달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력을 갖지 못한 상태에 주변으로 부터 밀려들어오는 많은 이해를 요구하는 사건들은 주인공 와타나베에겐 너무도 가혹하여 흡수되지 못하고, 어느 식으로 그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그가 가질 상실감의 크기에 대해서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마치 퍼즐에서 한 조각만 남기고 다른 조각들이 다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은 상황으로 인해 방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방황이 지속되고 상실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그는 이름도 모르는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또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런 관계도 지속되지 못하는 상황이 연속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도 그로부터 완전한 무언가를 얻지 못해 그 부분을 채우려 방황하게 될 것이고, 때문에 이 상황은 끝이 없는 연속이 된다는 것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완전함을 원할 것이다. 입으로는 그건 완벽주의자나 갈구하는 이상일 뿐이라고 할지 몰라도 막상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얻지 못하거나 자신이 믿고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것으로 그 부분을 채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서 완전한 사랑을 얻을 수 있으며 얻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것이 완전한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작가는 책 속 인물들의 상실감에 대한 반복을 통해 결국엔 우리가 삶을 살면서 계속되는 상실에 허우적거리면서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헤어지는 것의 연속이라는 것, 결국엔 완전함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TV속 드라마나 다른 연애소설 속에선 두 남녀의 애정형성과정을 보여주며 결국엔 그들이 완전한 사랑을 이루어 낸다는 것으로 결말을 내곤 하는 게 대부분이다. 나는 일전에 이런 것이 단지 사람들의 이상을 아무 흠집 없이 매끈하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허상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직 나는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고 또 경험이 많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봐온 일들을 미뤄보면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완전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이런 내 생각이 극단적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누구나 잘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소울메이트라고 여기는 친구나 연인에 대해 의심해본적도 없고, 서로에 대한 감정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면 내가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분류는 연애소설에 속하지만 ‘뭐 그렇고 그런 얘기겠지’ 하고 예상한 기존의 것과는 달라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나를 어지럽게 했던 것은 기즈키의 자살 부분이었다. 주인공은 그때부터 죽음을 우리 삶의 그 일부로서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을 그다지 인지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들었고 어느 모습으로도 그 감정을 분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주인공이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의 죽음을 견뎌야 했던 상황에서 나는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한편으론 앞으로 일어날 예견되지 않은 시련 속에서 그가 결코 다른 것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지 않길 바랐다. 기즈키의 죽음을 경험하기 전까지 와타나베도 지금의 나와 죽음에 대한 생각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도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다만 그런 힘든 상황을 겪고 나서 내 시선이 냉소적이고 모든 것을 허무하게 생각하게 되진 않을지가 조금 무섭게 다가왔다.

‘상실의 시대’는 처음 열고 읽을 때는 참 쉽고 부드럽게 읽혔지만 책을 덮고 나서 밀려오는 그 여운까지 쉽고 부드럽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선 이 글을 마친 다음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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