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제니 로슨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지 않은 것 같다면, 잘 숨기고 있을 뿐일 테니까.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서평 -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장을 넘겼을 때, 여느 다른 책들처럼 이 책에 유명인사들이 보내온 찬사가 있었다. 책을 읽을 때 작은 글씨를 읽지 않는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에 정신과의사의 한 마디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사를 받다니! 아직 프롤로그도 나오지 않았는데, 순간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거, 잘 선택한 걸까?"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프롤로그에서 제니 로슨은 경고했다. 안타깝게도 그만 읽으라고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책을 즐길 만큼 충분히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미친사람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다음 장을 넘겼다.


이 책의 원제는 「FURIOUSLY HAPPY」, 즉 "격하게 행복하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로슨이 언급한 '살아남기'와 '살아가기'는 큰 의의를 가진다. 아마 두 단어를 읽자마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가 행복이고, 전자는 불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살아남기'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슨이 바로 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로슨은 류마티즘, 우울증, 강박신경증, 거기다 극단적인 불안장애까지 안고 '살아남는 중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사람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해학적이다. 나는 살면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나오는 구슬을 언급한 책은 처음 읽어봤다. 그 주석을 잃었을 때 두 눈을 의심했지만, 그 정도에 놀란다면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다. 언젠가 사람은 '살아가는'게 아니라 '죽어가는'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순간 섬뜩했지만 이성적으로 돌아보면 매우 이성적인 말이다. 한창 염세적일 때에는 

「살짝 미친것 같아도 어때?」는 마치 한 편의 가족시트콤 같기도 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좋다. 엄마는 내게 어떤 관점을 안겨주니까." (-25page)


엄마를 잔뜩 한숨짓고 피곤하게 만든 후 로슨이 하는 말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딸이 우울증, 류마티즘,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아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 가끔씩 자해를 하고, 수시로 "나는 미친 사람이야"라고 읊조리린다면. 로슨의 어머니는 매번 "넌 미친 게 아니야, 색다른거지."라고 답하지만, 로슨은 그런 어머니에게 조목조목 반박하며 어머니가 한숨짓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로슨을 어머니가 끝까지 보듬어주는 모습, 또 로슨이 어머니를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이런 모녀의 모습을 보며 만약 내 주변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되돌아보게 했다. 로슨은 책에서 자신이 정신과의사에게 돈을 주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의사인데, 마치 가장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다가도 진료가 끝나면 방금까지 눈맞추며 이야기하던 사람에게 비즈니스 관계처럼 카드를 건네니까 말이다.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 경청이라고 생각하는 로슨처럼, 나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의 말을 잘 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정신병 환자에게 공감하고 경청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실질적인 도움보다 인정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들이 정신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잠시 정신이 아픈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을. 

사실 내게 '정신병을 앓고있는 사람'이라 하면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로슨의 모습 중 나와 정말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로슨이 일터에서 자신감을 잃고 패닉상태에 빠졌을 때 그녀를 구해준 단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잘하는 척해." (-82page) 나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된 후 대외활동이나 학회, 또는 장학금 등 수많은 면접을 마주하게 된다. 그 때마다 친구들이 내게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 같다고, 여유로워 보인다고 말한다. 그 때마다 전혀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겸연쩍게 웃으면서 넘어가지만, 사실 나는 엄청나게 긴장한다. 그 때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생각은 "잘하는 척하자."는 것이다. 청산유슈로 말을 하는 사람,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 열정있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주문을 걸다 보면,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인 척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나도 내 최면을 믿고 있다. 어쩌면 정신병과 싸우고 있는 로슨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때, 왠지 모를 안도감과 씁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로슨이 나와 먼 사람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어쩌면 나도 전혀 미치지 않은 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기분이었으리라. 

제니 로슨은 이제 유명인사가 됐다. 그녀의 블로그는 매달 2백만 명이 방문하고, 닐슨이 선정한 파워블로거, 허핑턴 포스트가 선정한 오늘의 가장 위대한 인물 등 많은 수식어가 그녀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러한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제니 로슨은 자신의 정신병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백해야 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그녀가 자신의 진솔한 고백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걱정했다. 그녀는 가장 마지막 장에서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 그러나 내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대가로 나는 거대한 목소리의 파도를 받았다. 

… 첫 책의 출판 기념 투어를 다닐 때 종종 개인적 고통을 고백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지 질문을 받았고, 

내 대답은 늘 똑 같았다. 그 스물 네 통의 편지가 내 고백으로 받은 최고의 보답이라고." (-408~409page)"


때때로, 아니 거의 항상 우리는 내가 한 행동이 불러올 효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후회할 수도 있다는 나의 어리석은 추측과는 달리 로슨의 진솔한 고백은 그녀를 확실히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녀 덕분에 최소한 스물 네 명은 더 행복해졌다. 로슨의 아픔이 불행이 아니라 행복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모두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다. 단지 그걸 잘 숨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프롤로그에서 로슨이 말한대로, 나도 미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당신도 이 책이 마음에 들 것이다. 미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잘 숨기고 있을 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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