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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분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확신을 가진 사람, 빛이 나는 사람
-「공간의 기분」 서평-
‘공간전략디자이너’.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같은 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 김종완은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
공간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철학까지 책임진다.
누군가의 철학을, 그리고 마음을 파악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무형적인 것을 유형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가치를 생각하는 디자인’인 서비스 디자인·유니버셜 디자인에 관심이 생긴 만큼, 색다른 그의 직업 뒤에 얽힌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첫 장을 펼쳤다.
[내 인생에 가장 선명한 행운]
아무래도 내가 현재 학생인만큼 먼저 건실히 커리어를 쌓은 사람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궁금했다. 김종완의 학창시절은 ‘당돌함’ 그 자체였다. 마치 불도저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도 부모님들이 허락해주기 쉽지 않은 유학을 머나먼 프랑스로 중학생 때 떠나는 당돌함이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행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김종완도 그랬다. 김종완은 ‘아무것도 없는 내게 선명한 행운이 주어졌다’고 말하지만, 면접관들은 김종완의 눈빛에서 확신을 읽었을 것이다. 이런 행운을 잡으려면 항상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다. 준비를 하려면 내 목표 설정부터 분명해야 한다. 벌써 대학생이 돼 버린 나에게도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중학생의 김종완이 존경스러워졌다.
[철학을 담은 디자인]
책에 담긴 그의 작업물들 중에 단연 눈에 띈 것은 아난티 코브의 펫호텔 이야기였다. 아난티 코브가 있는 부산 기장이 내 고향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 이야기를 디자이너의 책에서 보게 되다니! 지난 번 잠시 내려갔을 때 아난티 코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상가가 모두 들어서기 전이었는데, 아난티 코브에 새로운 형태의 북카페가 생겼다고 해서 방문했었다. 하지만 크게 실망했고 어머니와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실내 디자인이 미적으로 뛰어나기는 했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카페라면 책이 읽기 쉽게 구비돼있고 카페가 매력적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아난티 코브의 북카페는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책장에 빽빽하게 책을 넣어두고 심지어 책을 분류하는 기준이 ‘표지의 색깔’이었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새로운 분류기는 했지만, 전혀 실용성이 없었다. 소설책을 읽고 싶으면 해당 코너에 가서 찾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표지 색깔들 사이에서 꾸역꾸역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카페의 평수가 아주 넓었는데 카페는 아주 작았고 메뉴도 5개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의자도 오랜 시간 앉아 책을 읽기에 불편했고 전경만 좋았을 뿐이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평소 나도 공간 디자인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난티 코브의 다른 장소인 펫샵을 김종완은 어떤 식으로 디자인했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소비자의 눈높이’였다. 독특한 것은 여기서 소비자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것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실용성도 고려했는데, 동물의 배변 냄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이 흥미로웠다. 아예 냄새가 나지 않는 소재가 없기 때문에 냄새가 적게 나면서도 최대한 자주 바꾸기 용이한 소재에 집중했다고 한다. 아난티 코브 외에도 김종완이 디자인한 요리스튜디오 중 공간의 용도를 고려해서 물청소가 용이한 바닥소재를 적용한 사례가 있었는데,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용성도 아주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 나도 어떤 장소를 가든 디자인과 실용성을 살펴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공간의 기분」에 담긴 이야기는 내 인생과 커리어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 책을 읽으며 가장 심장이 ‘쿵’했던 부분은 그의 성공이야기도, 그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기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이라는 무심한 한 마디였다. 이 짧은 문장을 쓰면서 저자의 심장이 얼마나 아려왔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쓴 편지가 그림으로 수록돼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이 녹아있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 또한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산지 3년이 돼 간다.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갔기에 집에서 떨어져 생활한 햇수를 세 보면 6년이다. 지난 번 어머니가 스치듯 “진짜 효녀는 공부 잘하는 자식이 아니라 내 곁에 있어주는 자식이라더니, 널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고 하셨던 게 자꾸 생각이 난다. 지난 달부터 서울에 올라오시겠다고 하셨는데 학회, 대외활동, 시험 준비 등으로 자꾸 미뤄오던 것도 맘에 걸린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하는데, 나도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김종완은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확신’이 무척 존경스럽다.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표정에서, 그리고 눈빛에서 그 확신이 읽힌다. 그런 사람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말 ‘빛이 난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 또한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끊임없이 배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내가 모르는 디자인 전략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책, 「공간의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