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 마음으로 천하를 품은 여인
제성욱 지음 / 영림카디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동기

이 책을 왜 펼쳐 읽었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나는 선덕여왕을 모르고 있었다. 향기가 없는 모란 이야기나, 여근곡 이야기 등을 희미하게나마 들은 적은 있지만 선덕여왕과 연결시키지 못했고 분황사, 황룡사9층 목탑, 첨성대, 통도사 등의 위대한 문화 유산이 여왕 재임때 건축된 것인지도 몰랐다.

이 몰랐다는 사실과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것은 작가가 선덕여왕의 묘를 찾아가서 느낀 아이러니와 통한다. 여왕의 묘는 철길 건너 사람들이 찾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조용히 잊혀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신라에 있어 여왕보다는 오히려 김유신이나 김춘추에 더 치중이 되었던 호기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남존여비사상과 그 맥락에서 치밀하게 각색되어온 역사를 읽고 배우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젖어있었던 남성우월주의의 여파는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번에 선덕여왕을 처음으로 만났다.

작가는 글이 막힐 때마다 여왕의 능을 찾아뵈었다고 한다. 몇 시간이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산새소리와 바람소리 스치며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고 한다. 적어도 그분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마칠 때까지 작가는 그분과 일체가 되었으리라.


역사는 유기체

이 책을 읽고나서 느낀 점은 역사의 재평가이다.

돌고도는 것은 물레방아나 인생만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또한 돌고 돈다는 것. 우주가 존재하는 한 역사는 시대의 사명과 함께 재평가 받게 되어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사료가 모두 진실이나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 과장과 위선의 역사가 있다면 축소와 최선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점. 역사는 죽어 있는 화석이 아니라 현재도 살을 더하고 덜어내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점. 개개인이 바로 역사의 중요한 목격자일 수 있다는 점. 그럼으로 각자 현실을 직시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만이 역사를 훼손하거나 그르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언젠가는 우리도 이 시대와 함께 당대의 역사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여인이라는 딜레마

그동안 매사 논리적인 해석에 취약했다. 낱낱의 실체가 불분명한 두루뭉수리한 덩어리나 모호한 그림자만의 명암만 제시할 뿐 문제의 핵심을 짚는데 약했다. 사랑에 있어서나 우정에 있어서나 지적 탐구에 있어서나 이런 투명하지 못한 모호함 때문에 내 색깔이 없었고 나만의 사상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정체성이 흔들렸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그것이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닌 대부분의 가정주부나 여성들의 문제라고 착각하고 합리화했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지적한계에 부딪친 내 개인의 문제였으며 오로지 어리석은 자의  편견과 자기 변명이었음을 책을 읽으며 깨달아 갔다. 세상은 넓고 존경할만한 여인은 많았다. 선덕여왕은 그 중심에 서 있다라는 점을 작가는 최대한 자기 얼굴을 숨긴 채 인간적으로 유도한 것이리라.

 

최고의 권력-민의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왕의 지위에서 자신이 휘두르는 힘이 어디로, 무엇을 향해 흘러가야하는지 마치 먼 미래의 일까지 훤히 꽤뚫고 있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백성의 태평성대를 이루지 못한  여왕을 대하면서 지금 이 시대의 혼란과 불평불만을 되새겨본다.

올바른 시대정신을 가진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그때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지금엔 없다고 한탄하는 일은 어리석다. 그 옛 시대,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한들 지금 우리가 더 나은 시대로 그 시대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시대가 최악의 못난 지도자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한탄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의 어떤 힘을 내느냐에 따라 역사의 흐름은 바뀔 수 있다. 이 시대의 주역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여왕이 그 시대의 숨은 인재들을 알아보고 역량에 따라 역할을 맡겼듯 각자의 자리에서 쓰임받을 때까지 진심을 가지고 자기 분야에 충실한다면 아무리 귀멀고 눈먼 지도자나 국민이라도 외면하진 않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안철수라는 분이 시청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이같은 삶의 반증이라고 믿는다.

 

사랑

일개 촌부나 천하를 휘두르는 여왕이나 사랑은 한모습이었다. 다만 한모습으로 태어났으되 다른 족적을 남겼다. 칼을 겨누는 배신으로 이어졌으되 흔들림이 없었다.

여왕이 사랑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믿는다. 사랑을 잃었으되 삶을 잃지 않았으며 신하를 잃었으되 나라를 잃지 않았으며 건강을 잃었으되 백성을 외면하지 않았다고도.

그것은 한 치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욕망이 없는 존엄한 왕으로서의 면모와 치세를 잃지 않았음을 뜻한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은 외로웠을 망정 가장 미천한 백성에게까지 그 특별한 애정이 돌아가지 않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여왕!을 바로 이책 제성욱의 <선덕여왕>에서 새로이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기리 남을 유산 

 

호국의 염원과 백성의 안위, 왕권에 대한 존엄과 숭불정책에 대한 실천적 의지를 표상화한 황룡사 9층 목탑과 첨성대, 분황사와 통도사는 신라라는 작은 나라가 꿈꾸고 지향하는 범우주적 세계에 대한 이상을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후대의 우리에게까지 민족의 우수성과 훌륭한 문화백성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점이야말로 다른 어떤 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덕여왕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 또한 우리가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 살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도 남는다. 우리 당대에서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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