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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쇼코의 미소 _ 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 같은 게 아니길 바랐어.
본문 중에서.
이전 선배들과 대척점에 서있던 미진과 소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며 삶과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가 서서히 변해간다. 낡고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전 세대의 사고방식과 결을 달리하며, 슬픔과 어둠, 투쟁과 자기부정이 아닌 밝은 희망을 향해 서로 유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노래’라고 생각하는 미진.
변화기에 처해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자들은 외롭다. 타인들은 그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분노까지 표출한다. 그런 누군가의 혹독한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 세상은 변해가기 시작하고 새로움을 행해 나아간다. 국가나 사회의 변화도, 개인의 변화도 그렇게 고통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소은처럼.
결국 소은과 율랴는 먼 곳에서, 그것이 시간의 거리든 공간적 거리든 상관없이, 들여온 노래를 들으며 그 고통의 시절에 함께 했던 미진의 노래로 그의 사랑을 떠올린다.
미카엘라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고 아빠는 말했었다. 아빠의 말은 맞았지만 그녀는 이런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승패가 뻔한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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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 그 목소리는 분명 엄마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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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카엘라가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마음으로 딸애를 불러봤다.
미카엘라.
본문 중에서.
미카엘라(Michaela)는 “신과 닮은 자”를 의미하는 Michael의 여성형이다. 소설은 신과 닮은 가장 위대한 천사와 같은 아이들이 결코 타자화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복적인 비극적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
피해 당사자가 자신일 때 승패가 뻔하다고 싸움을 포기할 텐가? 손가락에 작은 생채기 하나가 생겨도 그것이 진정될 동안 쓰라림은 지속된다. 하물며 여러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 고통과 상처가 계속될 때, “지겹지도 않는가”라는 의문은 비인간적이다.
페스트에서 리외가 소년의 처절한 죽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목도한 후 예전에 페스트가 사람들의 죄의 대가였다고 설교한 파늘루 신부에게 묻는다.
“허,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에요!”
2014년 4월 16일에 죽어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지겹지도 않는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비밀
내가 뭐라구 바지에 풀물이 들 정도로 그걸 찾구 있었냐. 내가 뭐라구 네 눈에 눈물이 꽉 차 있었냐. 나의 귀염둥이, 나의 아가야.
본문 중에서.
제목 비밀을 향해 쌓아져 올라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마지막 비밀 아닌 비밀 속에서 써 내려간 할머니의 손녀를 향한 절절한 편지.
여전히 구태적인 시집과 며느리 관계, 남아 선호, 여성 교육 그리고 기간제 교사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치 및 이야기 전개, 여러 암시들이 결말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종국에는 감정선을 일거에 무너뜨려버리고 마는 힘으로 작동하게 만든 작가의 힘.
달리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한 소설이다.
왜 사람을 울리는가. 작가 참 못됐다.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