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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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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가 사랑의 역사를 통해 사랑의 역사를 이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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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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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_구병모

원래 양가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나만 해도 엄마 없이는 못 산다고 그렇게 오래 엄마를 포기 못 한다며 붙잡았으면서도, 엄마를 하루에 몇 번씩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갖다 버리는 상상을 한 적 있어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본문 중에서.


상처일 수 있고, 상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존재만으로도 한 숨 돌릴 수 있는 그것이 가족이 아닐까. 마치 곤의 아가미같이. 세상을 살아갈 때 때로는 숨기고도 싶고, 창피하기도 하고, 본인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지만 세상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도 가족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곤이라는 존재는 해류와 강하에게 좌절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삶 혹은 삶의 희망으로 보였을 수 있다. 죽음의 호수에서 살아나온 곤, 닥쳐올 죽음에서 삶을 이어준 곤. 이녕의 환각 속 ‘엄청나게 큰 물고기’처럼 거대한 생명력을 보유한 존재로서, 보여지는 것만으로도 놓고 싶지 않은 강렬함이랄까.

이녕은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 ‘엄청나게 큰 물고기’ 곤을 대상으로서 환각 아닌 환각 속에서 대했지만, 강하는 ‘……물론 죽이고 싶지’만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을’ 존재로 바라본다. 곤에게도 진정한 아가미가 생기는 순간일까! 살아선 다가갈 수 없지만, 물이 되어 흘러간 이들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아이러니.

해류는 어머니가 죽은 후 세상을 부유한다. 강하도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물처럼 사라진다. 곤은 그 물을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가족은 양가감정의 다른 말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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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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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_ 최은영

먼 곳에서 온 노래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 같은 게 아니길 바랐어.

본문 중에서.


이전 선배들과 대척점에 서있던 미진과 소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며 삶과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가 서서히 변해간다. 낡고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전 세대의 사고방식과 결을 달리하며, 슬픔과 어둠, 투쟁과 자기부정이 아닌 밝은 희망을 향해 서로 유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노래’라고 생각하는 미진.

변화기에 처해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자들은 외롭다. 타인들은 그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분노까지 표출한다. 그런 누군가의 혹독한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 세상은 변해가기 시작하고 새로움을 행해 나아간다. 국가나 사회의 변화도, 개인의 변화도 그렇게 고통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소은처럼.

결국 소은과 율랴는 먼 곳에서, 그것이 시간의 거리든 공간적 거리든 상관없이, 들여온 노래를 들으며 그 고통의 시절에 함께 했던 미진의 노래로 그의 사랑을 떠올린다.



미카엘라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고 아빠는 말했었다. 아빠의 말은 맞았지만 그녀는 이런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승패가 뻔한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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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 그 목소리는 분명 엄마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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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카엘라가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마음으로 딸애를 불러봤다.
미카엘라.

본문 중에서.


미카엘라(Michaela)는 “신과 닮은 자”를 의미하는 Michael의 여성형이다. 소설은 신과 닮은 가장 위대한 천사와 같은 아이들이 결코 타자화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복적인 비극적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

피해 당사자가 자신일 때 승패가 뻔하다고 싸움을 포기할 텐가? 손가락에 작은 생채기 하나가 생겨도 그것이 진정될 동안 쓰라림은 지속된다. 하물며 여러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 고통과 상처가 계속될 때, “지겹지도 않는가”라는 의문은 비인간적이다.

페스트에서 리외가 소년의 처절한 죽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목도한 후 예전에 페스트가 사람들의 죄의 대가였다고 설교한 파늘루 신부에게 묻는다.

“허,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에요!”

2014년 4월 16일에 죽어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지겹지도 않는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비밀

내가 뭐라구 바지에 풀물이 들 정도로 그걸 찾구 있었냐. 내가 뭐라구 네 눈에 눈물이 꽉 차 있었냐. 나의 귀염둥이, 나의 아가야.

본문 중에서.


제목 비밀을 향해 쌓아져 올라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마지막 비밀 아닌 비밀 속에서 써 내려간 할머니의 손녀를 향한 절절한 편지.

여전히 구태적인 시집과 며느리 관계, 남아 선호, 여성 교육 그리고 기간제 교사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치 및 이야기 전개, 여러 암시들이 결말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종국에는 감정선을 일거에 무너뜨려버리고 마는 힘으로 작동하게 만든 작가의 힘.

달리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한 소설이다.

왜 사람을 울리는가. 작가 참 못됐다.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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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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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알베르 카뮈

랑베르 :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하세요. 선생님 말씀은 이성에서 나오는 말씀이지요. 선생님은 추상적이십니다.

오통의 아들 필리프의 죽음 이후,

리외 : 허,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페스트에 대한 감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특정 대목마다 혹은 전체적인 인상이나 여러 상징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2020년 페스트는 외적으로 코로나라는 전염병 사태로, 개인적으로는 지인의 고통으로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독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에 관한 보도를 통한 전염병 확산과 확진자 및 사망자 숫자와 추세를 석 달 넘게 보고 들으면서 실생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외에 내가 느끼는 것이 상당히 추상적일 뿐이라는 것을 페스트를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랑베르의 추상적이라는 저 항변은 격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불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리외는 랑베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도 아내와 떨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리외는 누구보다 페스트에 밀접한 사람이었지만 오통의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기 전까지 페스트와 한 발 떨어져 있었던 것을 불현듯 인식하게 되었다.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어린 필리프가 죽음으로 향해가는 묘사 장면을 통해 페스트가 인간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고 죄를 저지르지도 않는 존재에까지 끔찍한 고통을 반복적으로 가하다 종국에는 참혹한 모습으로 삶을 빼앗아 가버리는 잔인함을 소설 속 캐릭터들이 빼놓지 않고 목격하게 함으로써 페스트와 죽음이 단어로서의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그 속에 내포하는 수 많은 고통과 비극, 허무와 절망, 무기력과 삶의 모순 등이 터져버린 수류탄 파편처럼 온 몸에 파고 드는 끔찍한 현실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태에서 조금이라도 비껴 있어도 우리는 실상의 상당 부분에 대해 무감해 질 수 있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언제부터인가 경쟁의 도구처럼 나라와 나라를 비교하고 다른 나라보다 아래에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있다. 하지만 그 숫자 중 하나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본인의 일이 된다면 그것은 완벽한 비극이고 절망이며 공포이고 불운에 원망하는 구체적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소설이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과 인간의 연대와 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앙의 시대에 근본은 공감을 통한 소통과 절절한 측은지심이 아닐까. 시대의 아픔은 멀리 있지 않다.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다면 타인의 일은 더 이상 타인의 일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추상이 자리잡을 공간이 줄어든다면 인간이 인간을 더욱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읽은 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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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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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세상을 향해 느끼는 뫼르소의 부조리와, 뫼르소를 향해 세상이 가지는 부조리함의 교차.
아랍인의 칼과 태양과 샘을 향한 욕망이 일으킨 살인과 그로 인한 부조리함의 폭로.

어렸을 때 읽은 기억만 남았던 책을 다시 읽어내리다 많은 공감을 느꼈다. 우리 사회 속 이방인으로 배척은 인종과 같은 외모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속에 흐르고 있는 관념, 관례, 의례, 규칙 등을 따르지 않는 것에 있다.
뫼르소는 그런 공동체적 관례를 마다했을 뿐 아니라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느낌에 솔직하고 더함이 없다. 어느 사회건 뫼르소 같은 사람들을 위험 인자로 분류할 것이다.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낙인 찍을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으면 사형수가 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은 우리 사회에도 어떤 수준으로든 작동되고 있다. 같은 말을 해도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말은 달리 받아들인다. 어떤 전문가의 말을 누가 인용하냐에 따라 신뢰가 달라진다. 세상이 그렇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사회가, 상사의 요구에 정확하게 거부할 수 없는 사회가 다다를 곳은 어디일까. 다양성과 의사표현의 자유로움이 있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무지와 편견에 의한 희생자가 덜 나오지는 안을까.

이번에 읽은 번역서는 2014년에 번역 논란을 일으켰던? 그 새로운 번역본이다. 개인적으로 불어도 모르고 불란서 문학에 깊은 관심도 없었기에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책 역자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역서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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