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손승휘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기 전에 저자나 소개 글 등에서 선익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능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게 생기는 그런 선익견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휘저으며 책에 대한 인상을 흐려 놓는다. 그것이 좋은 선익견이든 안좋은 선익견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 책을 다 읽고 처음에 가졌던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점에서 나에게 무척 놀라운 책이 되었다. 처음에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라기에 감정적인 문체에 심파적인 이야기 진행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우 절도 있는 문체에 시간, 공간적 배경을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사실에 비해 무척 넓게 잡아 책이 아닌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보기도 정말 오랜만인 듯 싶다.

이 이야기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여 동반 투신 자살한 김우진과 윤심덕의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쓰여진 이야기이다.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의 일부분이라고 하는데, 이런 노래를 남기고 떠난 사람들이었으니 그 삶이 불행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된다.

이야기는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이어지는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잇다. 현재의 남자 기훈이 윤심덕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현재이여자 나타샤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타샤가 처분하려고 하는 먼지 쌓인 할머니의 유품 상자에서 노트와 편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노트와 편지 내용이 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인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야기이다.

윤심덕은 친구의 소개로 만난 김우진을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김우진은 이미 아내와 아이가 있는 몸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사랑하는 일본 여인이 있는 상태. 책이 이렇게 짧은데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또 동반자살에 이르는 긴 과정을 설명하려면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중요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야기 진행이 시종일관 격렬하기 그지없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두 사람이 처한 현실은 사랑을 이루기에 그리 녹녹하지 않다. 몸과 마음으로 방황하다가 도피행을 택하는 두 사람. 그래서 나는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랑이,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쉽고 단순하지 않듯 이 이야기도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깊은 통찰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는 순간이 왔다.

책에 겨울 풍경이 묘사된 부분이 많이 있는데 퇴고할 무렵이 겨울이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읽기 딱 좋은 책이다. 석양의 창가에서 책을 집어 들어 땅거미가 내린 후에 책을 덮었는데 읽는 내내 겨울 풍경과 아픈 이야기가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랐던 점은 물론 소설 속에서의 이야기이지만, 김우진은 지식인이고 나름 시대적 고민을 하는 사람 같지만, 실상은 소위 말하는 한량에 가깝고, 윤심덕은 생각보다 훨씬 개방적인 여성으로 그려져 잇다는 것이었다. ‘하긴 신여성이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이해하고 그때부터 그녀를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 내 또래의 사랑에 빠진 여자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그녀에게 몰입이 훨씬 잘 되었다. 그리고, ‘윤심덕과 김우진이 동반 투신 자살하였다.’는 이 하나의 사건을 바탕으로 이렇게 재미잇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잇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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