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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 IV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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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신앙, 공공신학에 관심 가지게 된 사람에게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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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복음서 한 분의 예수?
리차드 A.버릿지 지음, 김경진 옮김 / 기독교연합신문사출판국(UCN)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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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도와주는 책. 전통적으로 쓰인 사자, 사람, 소, 독수리라는 네 가지 이미지로 딱 정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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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요람 하조니 지음, 김구원 옮김 / 홍성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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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나에게 박수를 친다... 수천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이어온 유대인의 정신. 인간의 자유와 좋은 삶을 고민하는 책이 성경이다. 통념에 억눌린 신앙인이라면 해방감 맛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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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요람 하조니 지음, 김구원 옮김 / 홍성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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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의하면 구약성경은 인간의 자유와 좋은 삶이 뭔지 고민한 것들의 결과물이다.

수천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이어온 유대인의 정신... 솔직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책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사회의 통념과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회의와 무력감에 짓눌려 있던 중이라 나에게는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이 책을 고른 나에게 박수를 친다... 


뭐랄까 단백질 같다고 할까?

통찰만 주는 게 아니라 핵심적으로 도움되는 내용들이 있다.


1부에는 구약을 어떤 책으로 봐야 하는지,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가 나온다.

요약하자면: 

구약은 철학책이다. 기본적으로 포로기에 있는 백성들에게 역사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다. 구약이 편집된 구조와 문학적 기법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이 부분 굉장히 꿀팁임).

참고로 여기서 개신교인들이 좀 불편해할 만한 내용도 있다.

구약과 신약을 비교하는데 저자는 개신교에서 구약을 부차적(?)으로 다루는 점을 탐탁잖게 여기고, 오히려 '증언'에 기초한 '저널리즘적' 신약보다 구약이 더 깊이가 있는 철학책이라 생각함.


2부에는 구약의 내용 중 저자가 핵심이라고 여긴 철학적 정신이 나온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노예나 기계가 아니라 주체적인 지성인이기를 기대하신다는 점(제일 통쾌했던 부분).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질서 사이의 갈등, '제한적 국가' 개념.

서구의 인식론과 달리 성경에서 진실이란 경험적이며 사후에 판단된다는 점.

즉 하나님의 신실한 섭리가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장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정의를 추구해가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사람은 잘못 알고 있던 것을 깨닫고 고쳐간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나에게 주는 인상은 구약이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본성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치 등 오랜 관찰과 씨름의 과정을 담은 만큼, 일종의 '고전'이 하는 역할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개별적인 고전소설과 다르게 공동체의 책이라 훨씬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게 된 생각.

유대인이 쓴 성경공부 교재를 가지고 공부하고 싶다...

+

바울도 랍비였고 유대인의 정신을 이해했을 텐데

이 책에서는 헬라문화의 오염으로(?)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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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 IV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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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한번 봤다. 정독은 아니고 대충.


핵심은 '투과성을 가진 경계선'이다.

나는 이 포지셔닝에 완전공감한다.

볼프는 이 컨셉을 미셸 드 세르토에게서 가져오는데, 세르토는 내가 학부 때 수업에서 듣고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사실 아주 재미있지는 않고 조금 건조하다.
그래도 읽는 것은 미세하게 뒤틀린 지점을 가려내는 안목을 접하는 묘미 때문이다.


책은 크게 보면 1부에서 문제점, 2부에서 실천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앙과 삶의 실패
기독교가 공적 영역에서 실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단순화하자면
기독교의 진짜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지 못해서 삶과 신앙을 분리하기 때문이다.
볼프는 '상승'과 '회귀'라는 용어를 썼는데, 상승이 내가 말하는 신앙적 가치이고, 회귀가 삶에서의 실천이라고 보면 비슷하다.
재미있게도 이 문제는 소극적인 태도와 과격한 태도라는 양극단을 낳는다.
아무것도 안 하거나(=나태) 지나치게 행동(=강요)한다는 것이다.

두 양극단, 나태와 강요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려는 사람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거나(나태) 세상의 기준을 넘는 윤리적 방법이 무엇인지 고심하지 않고 폭력적인 방법을 택한다(강요).
신앙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신앙을 진정제로 오해하거나(나태) 프로파간다로 오해한다(강요).
신앙이 빈약하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기독교가 복잡한 현실에 맞게 세상을 설득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근대사회에서 시장과 대중매체가 짜놓은 틀에 파묻혀 따라가거나(나태), 무식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외친다(강요).

이 문제는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을 세상에서 어떤 위치로 생각하는지와 연관된다.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나태함이고, 너무 세상으로 들어가려는 것은 과격함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적응하여 생존하는 전략도,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려는 시도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과 세상의 관계
우리가 추구할 태도는 세상에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열려 있는 것이다.
투과성이 있는 경계선. ‘떠나지 않으면서 다르게 사는 것’. 지배 질서 속에 살면서 안에서부터 전복하는 것.
이런 입장은 세상에 적응하려는 자유주의자의 전략이나 세상에 등지는 분리주의자와 구별된다.
중요한 점은 세상에 대해 no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에 yes하는 것이다.
세상을 정죄하기보다 기독교의 핵심을 세상에 적용시킬 새로운 방안을 생각하는 것!
기독교 정체성에 맞게 세상의 문화를 나름대로 변형해서 사용하는 것.
이것은 문화화를 만든다. 세상의 문화에 기독교 나름의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향해 열린 태도와 문화언어적인 호환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행동부터, 타자에 대한 사회적인 권리와 의무, 사회가 추구할 방향에 대한 비전까지. 
현대사회는 행복을 개인의 감각적 만족으로 축소시키지만, 기독교인은 우주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의 기쁨을 추구해야 한다.


실천의 예시
개인적인 영역에서. 
식생활을 나눔과 예배의 표현으로 사용한다. 배고픔의 성격이 변한다.
환대의 장소를 만들기 위해 안방을 줄이고 거실을 키우며 손님용 방을 만든다.
공적인 영역에서.
공통의 관점을 가진 ‘다수 공동체의 공존의 정치’에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다원적 정치체제로. 다양한 소수를 포용하는 방향.
타종교에 대해서도 단지 관용이 아니라 ‘해석학적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각 종교에서 경전을 해석하는 노력에 공감하고 타종교가 자신의 종교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도 경청하는 자세.
이것은 꼭 다른 관점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의 문화를 길러낼 내적 자원에 집중하는 것.



+
이외에 재미있었던 점

기독교가 폭력이 되는 이유
#양적인 사고와 질적인 사고. 
사람들은 더 종교적이면 더 폭력적이고 덜 종교적이면 덜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유일신 사상은 폭력적이다?
그것은 표층적인 이미지일 뿐, 심층적으로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추구하는 다원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또한 마지막 때에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심판(폭력)을 인간이 행하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창조라는 교리는 폭력적이다? 
창조를 외부에서 행사한 폭력적 힘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에서 유가 생성된 것이다.
#구속, 새 창조, 세상에의 개입은 폭력적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변화는 예수의 자기희생적 사랑이며, 그것은 폭력적인 개입이 아니다.
사람들은 전적인 환대가 답이라 생각하지만 환대는 결코 폭력을 없앨 수 없다. 
비폭력의 가면으로 폭력을 왕좌에 앉힌다. 뉘우치지 않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곳에 놓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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