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눈사람
최승호 지음, 이지희 그림 / 상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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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작가 또한 언급했듯이 눈사람이다. 때문에 더욱이 최승호 시인의 대표작인 「눈사람 자살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매순간 김서린 생애만 붙잡았던 눈사람이 삶의 마지막만큼은 따뜻하길 소망하는 그 작품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시기가 있었다. 다만 『마지막 눈사람』은 순식간에 찾아온 빙하기에 홀로 남겨진 눈사람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모든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에 눈사람만큼은 오히려 눈송이가 불어나 살이 찐다.
여전히 눈보라가 치는 종말 가운데 눈사람은 자괴파괴적인 생각까지 도달한다. 그 다음 장에 배치된 시가 「눈사람 자살 사건」이다. 스스로 따뜻한 물을 튼 뒤 욕조에서 잠이 든 눈사람과는 달리, 「마지막 눈사람」에서의 눈사람은 차라리 자살 같은 추락사를 원하고 있다. 빌딩 붕괴로 부서진 눈사람을 과연 '자살'했다고 판명할 수 있을까. 그것이 타살이든, 사고사든 그저 눈사람은 이 저주같은 고독을 '능동적으로' 끝맺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란한 고요를 스스로 멈추고 끝내 눈감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이렇게 밤의 옥상 위에서 고독만이 나의 뼈라고 생각하면서, 강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먼 봄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_130p.

슬픈 모순이다. 생명력이 움트는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오직 자신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굵직한 매듭이 풀리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승호 시인이 눈사람을 큰 상징물로 삼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모두가 죽어서야 자신이 살이 찌고, 모두가 살아날 때에 비로소 자신은 사라진다. 영원히 멈추지 못하는 고독 속에서 눈사람은 사는 것 같지도, 죽지도 못하는 삶을 이어 나갈 것이다. 자살 같은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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