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폈을 때, 책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작가가 이끄는 대로 빠져드는 경우가 있는데 레이먼드 챈들러씨의 책들이 그렇다. 특히 이 책을 읽을 땐 추리소설인데도 살인사건의 잔인함보다 필립 말로우의엉뚱한 행동과 내면을 따라가느라 바빴다. 작가의 케릭터들을 이해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한다. 친절하게 설명된 케릭터들은 아닌데도 나름의 매력들로 인해서 인상이 오래오래 남는다. 매혹적인 배우들이 나오는 6,70년대 외화를 보는 듯 하면서도 그리 촌스럽진 않다. 아니, 우정이나 허세, 사랑같은 것들을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방식으로 다루는데도 낭만적인 여운마저 남긴다. 난 이 작가가 좋다. 챈들러 스타일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그의 소설들은 대중적인 향수의 한정판 패키지같은 느낌이라 친숙하면서도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