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안에는 끝나지 못하는 전쟁이 있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 같은 이탈리아의 고적한 빌라 안에서 전쟁이 남긴 상처를 질질 끌며 네 사람이 네 가지 색깔로 살고 있다. 시적인 문체를 통해서 작가 역시 동참한다. 사막과 전쟁과 화약과 포화, 총들은 이들의 가슴 안에 사라지지 못하는 먹구름처럼 드리웠고, 아직 다른 삶으로 건너갈 엄두를 못 낸채 폐허 속의 유령처럼 존재한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가지만 살아있지 않은 이상한 상태로 그들의 슬픔이 책을 건너 내게로 온다. 영화를 먼저 봤다. 유명한 장면 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난 책에서 그 장면의 흔적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책 속에서 동일한 사랑의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면 난 울지도 모르겠다. 아직 절반을 넘어섰을 뿐이나 가슴이 먹먹해서 서평을 남긴다. 이토록 절망적인 아름다움이 더 깊은 절망으로 나아갈까봐 이젠 저어하게 된다. 펑펑 울 것 같다. 중년에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아름다워서 첫사랑처럼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 같다. 번역은... 조금 난감하지만, 그런 불통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사막을 좋아했었는데 사랑에 실망한 후 이상하게 사막이 싫어졌었다. 나는...... 이 책을 영화화 한 사실을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을 통해서 알았었는데 둘 다 나를 버렸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빈자릴 이젠 이 책이 채울 것 같다. 언어가 아니면 사랑이 아닐 것 같던 나에게 그들이 남긴 유일한 언어가 이 책이다. 왠지 나 역시 책 속 캐릭터들에게 동화되어서 폐허같은 빌라를 맴도는 것 같지만,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해왔던 것 같다. 사랑은 사람의 머릿 수만큼 다르고 복잡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 속의 사랑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맨스를 싫어하지만 이 책읔 내 삶의 일부같아서 소중하게 읽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