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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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읽던 책과 기사에서 수 십번은 이 책에 대한 언급을 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미 읽은 책처럼 친근했으나 사실 읽은 적이 없다는 것을 얼마전에 깨닫고 이 책을 구입했다. 내가 읽은 글들을 연결해줄 지적 통로인 '빅브라더의 세계관'이 궁금해서였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와 닿은 통찰은 '이중 사고'인데,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현재, 그리고 국가 단위의 큰 집단이 아닌, 가족이란 작은 집단 내의 (내가 본성이라고 부르는) 말의 계층성, 강압적인 독재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논리적이면서 억압적인 언어의 기만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망가뜨린다고 생각해 왔다. 인간의 이성은 모순을 용인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 맹신하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도록 인식은 망가지고, 모순의 공존(자아 분열) 상태가 되어 버려서 의존적, 또는 고립적 성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주인공처럼 결국은 선택을 해야한다는 데 있다. 아무것도 안 해야만 안전한데도 불구하고, 비극을 자초할지도 모르는, 때론 알면서도 행위를 선택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 끝이 죽음이라면그것은 비극이지만, 어떤 경우에서는 유일한 실존이다. 거의 그런 혼란과 공포, 무모함을 가지고 자아를 탐색하게 만드는 강압적 환경이 난 언어로 이루어진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중논리는 모순으로부터 실존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를 통해서.
왜 이 문장이 모순의 긴장을 해소했냐면, 어떤 모순에도 끝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긴장은 해소될 것이다. 문명의 성격이 어떠하든 한결같이 말이다. 정반합 어떤 과정에서도 운명은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놓아준 적이 없다.
결국 언어를 이기는 실존은 죽음이란 의미인 동시에, 실존적 선택엔 죽음을 감당할 만큼의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것인데, 그 정도로 언어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한 편, 반드시 넘어설 수 있는 한계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이중 논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내부당원의 모습에서 내가 발견한 건, 언어를 뛰어넘는 아주 쉬운 방식이었다. 공포와 불안같은 실존은 힘을 얻지 않으려는 평화주의적 공포, 인간은 평등하다는 착한 신념에서 나오나, 이중 논리의 용인, 모순의 습득은 권력욕, 힘 그 자체였다. 난 이 책에서 이런 그림을 봤고, 이 차이를 얼핏 이해하게 된 것 같다.
1984 속에서 인간 실존은 비극이다. 세상 어디에 있든지 '이중 논리'를 가진 어떤 힘은 사람을 끝까지 따라다닌다.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든지. 문명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문명 실존인 것 같다. 문명은 인류의 총합이고, 이중논리는 문명의 구성 요소 중의 하나여서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계층 사회에 천착해 자유로워질 것인지, 평화적이고 고통스러운 실존으로 방황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죽음과 다르게 삶의 선택는 운명이아닌 기술만 있을 뿐이었다. 어떤 수준의 삶을 동경하든, 이젠 경멸감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와 다르더라도.
빅 브라더의 계층 통제만 놓고 보자면, 기술의 발전이 무비판적으로 모든 욕망을 흡수할 때, 가장 저질의 상황이면서도 다수인 의견을 따라서 실현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다행이도 정치가 다수를 맹신하진 않으므로 문명의 핸들을 욕망, 본성, 이기심과 같은, 다수성에 빼앗기진 않겠지만, 늘상 합리적 이성과 충돌하며 문명의 핸들을 위태롭게 하는 걸림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인간의 진짜 실존이 죽음과 선택 뿐인 걸 놓고 보면, 빅 브라더는 절대자나 전지전능한 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스미스와 줄리아처럼 인간은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선택을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정답은 아니다. 그런데 빅브라더는 정답만을 요구한다. 그런 인지적 오류 때문에 빅브라더의 세계 제패는 실패할 거라고 생각한다.ㅎㅎ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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