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을 중도포기했다. 감정이 과한 책인데, 발번역이었다. 행간까지 자신의 넘치는 감수성의 도구로 삼으려는 작가인 것 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작가의 개성이 분명한 의도적으로 구린 대화체들을 번역가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색하고, 미련한 농담들이 되어 버린 대화체가 주를 이루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수가 없었다. 일부러 루저처럼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슬픈 주제를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농담으로 이끌어가려던 작가의 노력이 가상한데, 번역가는 왜 그걸 이해하지 못했을까?

수 십년 전에 읽어버린 가족, 혼자만 살아남은 죄책감과 같은 슬픔의 이중주를 연주하면서 작가는 우스꽝스럽게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화자들이 상처받고 세상과 거리를 둔 루저인 걸 강조한다. 이 찌질한 두 남녀가 하는 말은 족족 대화의 핀트에 어긋나고, 짜증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문체 곳곳에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떨어진다. 현지어와 현지 감성으로 읽었다면 아름다운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을 ˝.....그렇지? 예!˝ 따위로 감탄사마저 딱딱하게 번역할 게 아니라, 우리말 정서에 맞도록 약간의 편집만 가했더라도 끝까지 읽었을 텐데. 공감이 전혀 안 된 촌스러운 책에 이별을 고한다. 이별사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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