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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
로버트 루이스 윌켄 지음, 배덕만 옮김 / 복있는사람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 있는 곳에 이해가 있다.
(로버트 루이스 윌켄,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을 읽고)
오늘날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기독교인들은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비기독교인 들이 볼 때 기독교인들은 참 무식하단다. 당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봐도 그렇다. 최근 떠들썩한 12월 전쟁설을 주장하는 어떤 이나, 청와대 땅굴을 이야기하는 자들을 보면 정말이지 말이 안 된다. 전문적 지식은 고사하고 상식이 안 통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사실로 믿을 뿐 아니라 확신 가운데 기도하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복음전파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냥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한다. 만사형통이라 한다.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데 잘 못 살더라고 하면 그 사람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묵살한다. 더욱이 강단에서 나오는 설교들도 가만 보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많다. 더욱이 정치적 발언이나 타종교에 대한 발언들은 어찌 보면 무식 그 자체다. 간혹 무슨 토론회 같은데 나온 기독교인은 논리적 발언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반복해서 우길 뿐이다. 그러니 비기독교인 들이 어찌 기독교를 무식하다, 무례하다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고민과 갈증 속에서 제대로 된 변증을 만났다. 밭에 감춰진 보화를 캐낸 기분이다. 윌켄은 2천여 년 전 로마 시대의 기독교인들을 연구하여 우리에게 내어 놓았다. 그가 전착한 시기 (1세기-7세기) 또한 비기독교인 들과 어울려 지낸 시기였고,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였다. 그러한 시대에 교부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바르게 변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기독교를 말하고자 하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고 이제 역전된 정치적 상황에서 또한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제대로 설명하고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고민에서 위대한 신학자들이요 영적 스승들이 나타났다.
윌켄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초기 교부들을 연구하여 그들의 사상을 주제별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이레나이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락탄티우스, 아타나시우스,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우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윌켄은 서두에서 밝히듯이 네 명의 중요 교부에게 집중하였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 4세기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7세기의 고백자 막시무스다.
이 네 명의 교부들을 통해 윌켄은 기독교의 주요 교리의 형성과정과 변증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천지창조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힘썼고, 로고스의 성육신에 대하여, 삼위일체에 대하여,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사회 정의에 대하여 논한다. 윌켄이 연구한바 초기 교부들은 모두 그리스, 로마 문화와 학문에 상당한 전문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글을 알고 있었고 수사학을 공부했기에 적어도 일반 학문에 대하여도 결코 무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알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독특한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이 공부한 그리스, 로마의 지식은 사유와 추론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계시에 의해 알려지며, 계시에 대한 순종 및 계시하는 자에 대한 사랑으로 획득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거스틴이 가르친 바, 우리의 지식은 지식의 대상이신 그 분을 사랑함에 기인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마귀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믿는다. 허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연합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은 사랑과 함께 하며 리샤르 드 생 빅토르가 말한 바, “사랑이 있는 곳에 이해도 있다.” 교부들은 그렇게 뜨겁게 사랑함으로 그들의 지식을 확립하였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윌켄이 주장하는 바, 교부들이 그리스 문화에 의해 기독교를 설명하려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통해 그리스 문화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속화(secularization) 되지 않고 오히려 세속을 성화시킨다. 교부들은 세속화(kenosis)를 통해 신성화(theosis)를 이룬 뛰어한 학자들이었다.
또한 교부들은 무엇보다 목회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자들은 서재에서 책만 읽고 연구한 사람들로 예상했는데, 교부들은 실제 교회를 돌보고 예배와 성찬을 집례 했으며 교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들이었다. 목회적 관심, 목회적 필요에서 신학적 성찰을 한 사람들이었기에 굉장한 도전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신선한 도전이 생겨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윌켄이 소개해 준 바 교부들을 모방하고 배우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분의 계시의 은총에 의한 학문을 연구하며, 그 연구한 바로 공동체를 섬기는 일이다.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의 헌신이 진정한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길 임을 깨닫는다.
이런 멋진 연구를 해서 책으로 출간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고, 이런 멋진 책을 번역해 준 역자에게 감사하고, 이런 멋진 책을 추천해 준 존경하는 목회자이자 연구자인 김기현 목사님에게 감사한다. 이 시대 교부들이신 그 분들을 존경하며 그렇게 나도 살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빅토르의 말이 계속 되뇐다. “사랑이 있는 곳에 이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