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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악의 꽃 (총6권/완결)
Leefail / 블루코드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천제의 아들 즉 천자인 휘도는 본신의 뛰어남에 비해 만인을 다스리는 자리에 뜻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위치가 가지는 무게는 커녕 스스로의 마음 하나 다잡지 못한 상태로 자만하고 그로 인해 현 천제의 악의 꽃인 선녀 단홍과 믿었던 수하 현문의 모략에 걸려들어 속계로 도주하는 굴욕적인 신세로 전락해요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비참함을 되새기며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휘도는 다른 방도 없이 천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육로 주목랑마를 향해 무작정 나아가던 중 눈밭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던 청년 소헌을 발견하게 돼요
작품의 제목이자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무게감을 가진 악의 꽃이란 고귀한 함으로 칭해지지만 실상 제물의 자격으로 속계로부터 올라와 선녀의 직함을 받은 이들을 조롱하며 일컫는 말이기도 해요 천계에 오른 선녀라곤 하나 그들 존재의 의미는 한 점의 과오도 용납되지 않는 천제의 죄업을 대신 받아들이는 보관함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천계의 사람으로서 휘도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죄업을 받아들이며 갈수록 악독해지는 단홍을 더이상 견뎌낼 수 없었던 탓에 강한 분노와 경멸로 그녀를 누르려들었고 그렇게 자만했던 결과가 바로 현재의 처지로 이어져요 그를 직접 내치는 이의 말이 그러하듯 초반부까지도 휘도는 저만의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오랜 시간 높은 자리에서 줄곧 그렇게 살아왔던 이가 고작 한번 충격을 받는다고 해서 단숨에 변하는 일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겠지만요
그런 상황에서 운명처럼 마주한 소헌과의 만남은 평범하고 초라하기 그지없을지언정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던 휘도에게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인연인지 악연인지 당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지켜야할 나만의 것이 없어 간절함 애틋함 무엇하나 느껴보지 못했던 휘도에게 소헌은 그러한 감정의 존재와 무게 또 그 무게를 지켜내고자 이젠 발을 내딛어야 함을 깨닫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스스로 바란 자리가 아니라고 얘기 하면서도 그 자리는 당연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던 휘도의 입에서 다른 이유도 아닌 오직 소헌을 위해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 그때야말로 본인이 허울좋게 내뱉던 말뿐인 위선을 넘어섰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 소헌은 가장 처음의 만남을 비롯해 끝에 도달하기까지 단 한순간도 강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인물이었어요 일견 유약한 이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소헌이 마주했던 과정들을 차근차근 되짚어 본다면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휘도의 정체와 이를 밝히는 하계의 차사 염라대왕의 존재를 약간의 혼란 끝에 덤덤하게 받아들이던 모습에서 대부분이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지만요 세상 어떤 유약한 이가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하는 동생을 찾고자 백호의 아가리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밀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이무기를 찾으려들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자신을 매몰차게 내친 이에게 닿고자 사실상 죽음이나 다름없는 방법을 택하겠어요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말에 호기는 부릴지언정 두려움을 더 크게 내비쳤던 소헌이 정작 자신의 테두리 안에 들인 사람과 관련한 일만 생겼다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은 정말 미련하면서도 강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전체를 크게 아우른다면 휘도가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소헌과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 과정에서 휘도가 천계에서 바라는 천제가 아닌 본인이 지고 가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무게를 아는 이로 성장하고 이러한 중심에 소헌과 소헌이 퍼붓는 맹목적인 애정이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악의 꽃이었어요 읽는 시간이 즐거운 작품이었고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어요 좋은 작품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