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한국의 탄생
조우석 지음 / 살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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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가뭄끝에 단 비요, 마른 하늘에 핵폭발과 같은 책이 나왔다. 가뭄끝에 단 비라고 표현한 까닭은 한국사회의 최대 쟁점이었던 박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말끔히 풀 수 있는 계기(완전히 풀리지는 않는 것 같다.)를 전해주기 때문이요, 마른 하늘에 핵폭발과 같다고 표현한 까닭은 동시대 반박정희 진보지식인들의 지적 편향성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실명을 들어서까지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대사의 모든 쟁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박정희를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레퍼런스를 근거로 다소 무디지만 어쨌든 날카로운 균형감각을 가지고 해부하고자 했다.

 

제목에 한국의 탄생이라는 문구를 적어 넣은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건국의 기초를 다진 이승만을 빼놓을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오늘의 근대적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가 박정희인데다가 그가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박정희 없이는 현대사 자체를 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의 진보와 보수 담론의 뿌리 모두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진 것들이라 박정희가 빠지면 진보니 보수니 성장이니 분배니 하는 모든 현대적 담론들이 올스톱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박정희를 제대로 해부하고 종합해야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사상적 내출혈과 역사적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그 시대를 몸으로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유신체제를 지탱하던 당시 참모들인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김성진 문공부 장관 등의 증언(오원철씨의 그것은 아직 못 읽음), 역사학자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 외 각종 저널을 익히 봐서 당시의 시대상황과 시대의 요구에 대해 좀 아는 나는 본 서적의 시각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것을 읽고 나서도 또 한번 미적지근한 의혹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선 장점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책은

 

첫째, 박정희에 대한 저차원적 이분법을 확실히 뛰어넘고자 했다. 보수-진보, 선-악으로 박정희를 몬도가네 식으로 재단하려는 무지막지한 발상 자체가 없다. 그의 다양한 모습을 모두 포착하면서 그 모두를 끌어 안고자 하는 몸부림이 역력하다. 현실정치를 보지 않고 교과서나 탁상공론을 통해 이분법적이고 교과서적인 잣대로 박정희를 평가하기에는 선악을 떠나 그 인물의 크기가 너무나 크고 시대를 앞서갔다는 얘기이다. 또한 박정희의 과라고 평가받는 공작정치, 정보정치 등에 대해서 저자는 당시 학생과 지식인들의 무조건적인 박정희 반대가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무척 공감하는 바이다. 한편, 저자는 학자적 양심으로 박정희에 동조했으나 학생-지식인들의 몬도가네식 이분법에 희생되어 스러져간 친박정희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소량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지식인 사회의 막무가네 이분법은 명분을 가장한 또 다른 지적 폭력의 하나에 다름아니며 이미 학자적 양심을 상실했다라고 일갈한다. 민족의 안위와 발전보다는 명분만을 앞세워 주도권 싸움, 파벌싸움에나 목을 매고 있는 오늘날의 자칭 진보세력들을 볼 때 정말 공감가는 통찰이다. 이미 균형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나 오늘날 젊은이들 대다수의 문화에 녹아들어 간 소위 민중문화에 대한 칼같은 비판과 걱정도 빼놓질 않는다.

 

둘째, 박정희에 대한 것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라는 인물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행동과 사상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다큐 형식으로 대부분의 지면에 할애한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소감을 스펙타클 히스토리 다큐저널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박정희의 사상은 고향인 구미 상모리와 대구사범학교, 그리고 만주 관동군에서의 체험이 8할을 차지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태어나고 자란 상모리 시절의 찢어지는 가난은 일찌기 그에게 엄청난 수치심과 가난구제에 대한 불타는 투지를 심어 주었으며, 대구초등학교와 상모교회는 최초로 근대를 바라보는 창 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알렌의 제자가 지었다는 상모교회에서는 오늘날과 다르게 당시의 진보적 기독교 문화로 말미암아 만인평등, 인간존엄의 반봉건적 정신을 이어받는다. 대구사범 시절은 지식인으로서 친일과 반일 사이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지리한 모색의 시기다. 사회주의, 민족주의, 자유주의 등등이 섞여 소용돌이 치는 혼란 속에서 동기들의 상당수가 퇴학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일본과 관계된 것이면 무조건 반대하는 지사적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일본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울 것이냐를 놓고 갈등하게 되는데 학년이 올라갈 수록 떨어지는 성적표는 이런 고뇌와 갈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그는 군인의 적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대구사범 4학년때 만주수학여행에서 뻗어나가는 일본제국의 힘에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고 결정적으로 1년 뒤인 1936년 2월 26일에 일본 동경에서 일어난 황도파 청년장교들의 쿠데타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비로소 군인의 길을 걷자는 결심과, 이를 통해 사회개조와 정치개조를 하자는 꿈도 품게 된다. 그리고 학교선생으로서의 의무연한 3년이 지난 후인 1940년, 안정된 직장과 어머니의 만류도 무조건 뿌리치고 만주 관동군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이는 봉건사회와의 단절과 근대사회로의 비약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겠다. 이 때부터 박정희는 그 특유의 "단절적 비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사관학교에서는 줄곧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한편, 이 곳 관동군에서 그는 나중에 한국의 경제개발을 이끄는데 원동력이 되는 마인드의 기초를 모조리 흡수한다. 당시 만주라는 공간은 무척이나 광활하고 야성적이며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등등이 모여있는 역동적이고 위험한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이 곳을 열심히 개척해나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패기에 박정희는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당시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에 속하는 일본육사출신 장교로 구성된 관동군 지도부는 이 곳에서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일본 본토의 대본영도 나몰라라 할 정도의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관동군의 지도로 항만, 교통, 산업, 도시, 각종 인프라 등등 모든 것이 엄청난 효율로 계획 및 건설되고 운용되었으며 그 스케일은 무척이나 방대하고 조직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 곳에서 박정희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일본제국의 기상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으며 엘리트 위주의 효율적 성장정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 다음 성적 우수자를 위한 일본육사 위탁교육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제국 운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 하지만 일본은 패망했고, 조선이 해방이 되고 나서 실업자가 된 박정희는 다시 육사 1기로 입학한다. 이 때 아버지 이상의 존재이자 사회주의자인 셋째 형 상희가 해방 이후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우익 시위대의 구타를 받고 숨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장례식장에 나타난 남로당원들을 만나면서 박정희는 잠시 남로당 활동을 하게 되고 이 문제로 나중에 제주도 4.3사건, 여순반란 사태 때 숙군작업의 대상으로 지목되게 된다. 하지만, 군대 내부에서 워낙에 평판이 좋았던 관계로 그는 백선엽 장군을 포함한 군 수뇌부 대다수의 적극적 구명운동에 의해 감옥에 수감된 지 1달만에 민간인 신분으로 업무복귀하게 된다. 미국인 군사고문도 이승만에게 구명을 조언할 정도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극적인 예가 박정희 빼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사회적 사상의 흐름이 사회주의는 되도 공산주의는 무조건 안된다였기 때문에 공산당이 아닌 남로당에 가입했던 박정희는 정상참작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후로 일어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박정희는 무조건 반공의 마인드를 확실히 굳히게 된다. 곧 이어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박정희는 정보장교로 생활하며 평생의 반려자인 근대적 여성 육영수를 만난다. 대구사범시절 부모에 의해 조혼한 전처를 뿌리치고 재혼한 경력에 대해서도 세간에 말들이 많은데 이 책의 저자는 마오쩌둥의 예를 들면서 이를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전근대적 봉건성을 무조건 벗어나고자 하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트렌드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읽지 못하고서는 박정희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전처에게는 평생의 한이 되어버린 박정희는 어쨌든 그 특유의 "단절적 비약"을 결혼문제에서도 발휘할 정도로 상모리로 대표되는 봉건사회를 탈출하고자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는 한편, 1952년에 일어난 부산정치파동 때부터 박정희는 슬슬 5.16혁명을 예행연습하는데 그 유명하다는 "육군장병에게 고함"이라는 문서의 초안을 사령관 대신 대필하여 이승만의 군대투입에 정면으로 저항한다. 전쟁이 끝나고서는 혁명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알리고 다닐 정도로 대담성을 보여주었으며 4.19 때는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계엄군에게 탄약을 공급하라는 이승만의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4.19가 성공으로 끝나고 장면정부가 들어섰으나 무능과 부패로 얼룩지면서 다시 한번 박정희는 혁명의 당위성을 공공연히 군수뇌부들에게 알리고 다니는 한편 4.19때 계엄군을 투입한 대가로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자퇴를 권유하고 이를 장교서명운동으로 발전시켜 마침내 총장을 퇴진시키는 대담성을 발휘한다. 이처럼 군 내부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다닌 대가로 4.19가 일어난 지 일년 만에 발생한 5.16은 3,500명의 소수 병력으로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혈혁명으로 성공했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재건최고위를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준비의 부족으로 경제운용에 있어서는 초보적인 모습을 보여 일시적으로 경제가 마비되는 현상까지 빚게 되고 무언가 성과를 보여야하는 박정희는 점점 초조해진다. 1963년 윤보선과의 대권경쟁에서도 간만의 표차이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4년 본격적으로 경제개발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는데 경제개발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겠다 하는 곳이 너무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에게 청구권을 협상하게 되고 이 때 지식인-학생과 대대적으로 부딫히게 된다. 저자가 보기에는 당시의 지식인-학생들이 박정희에게 너무나 막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대통령이 된 사람의 정당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일본과 손잡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비난으로 일관하니 정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후 박정희가 공작정치, 정보정치에 손을 대게 된 결정적 원인의 대부분을 저자는 지식인-학생 그룹의 무조건적 반정부시위에 근거하며 당시 김지하 시인등이 반정부 구호로 내세웠던 글구들을 근거자료로 제시한다. 이어서 월남전 파병을 계기로 경제발전의 토대를 더욱 단단히 다지게 되는데 이 때 박정희는 명분은 없는 전쟁이니만큼 실리를 단단히 챙기자는 지시를 내리고 엄청난 달러를 확보하였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경제가 눈에 띄게 성공해 나아갔으나, 국민들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 지면서 박정희식 통치에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68년 김신조 일당 남침사건, 땅굴 사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70년 EC-121기 격추사건 등등을 계기로 한반도엔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닉슨이 1971년 미 제 7사단을 한국에서 강제철군시키면서 박정희의 안보불안은 극에 달해간다. 이대로라면 자주국방 없이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 들이닥치는데 미국이 준 시간은 달랑 5년 정도밖에 안된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30억달러가 필요한데 미국이 제공한 금액은 15억 달러가 전부다. 그러면 마지막 방법은?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자주국방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꺼번에 잡는 대 모험을 감행해야만 한다. 물론 외환위기의 가능성도 크다. 60년대에 이미 외환위기를 몇차례 겪었기 때문에 이 모험의 실패확률은 무척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보다 아직은 높은 북한의 GNP와 숙청작업이 모두 끝난 김일성의 선군정치체제를 고려할 때 어떻게든 중화학공업을 통해서 이 모든 위기를 단시간에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엄청날 것인데 이를 어떻게든 막아줘야 한다고 당시 경제 2수석 비서였던 오원철이 주장했고 박정희는 이를 적극 받아들여 유신이라는 또 하나의 모험을 감행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1972년 선언된 중화학공업화는 성공적으로 정착이 되어 오일쇼크등의 엄청난 위기들 속에서 강력한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한편 군수물자의 국산화와 미사일 및 핵개발이라는 쾌거까지 이루게 된다. 그런데, 이 유신기간동안 박정희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한다. 김대중 납치사건인데 당시 중정부장이던 이후락의 과잉충성으로 발생하였으나 이유를 불문하고 일본과의 외교마찰로 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1974년 불만을 품은 문세광의 육영수 저격사건이 터진다. 청와대 내의 정보기관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육영수가 죽음으로써 박정희는 더욱 고독해지고 유신정권은 이 때부터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한편, 박정희는 육영수의 빈자리를 비선공작정치로 채우는데, 이 공작정치를 통한 충성경쟁 유도의 부작용으로 김재규와 차지철이 대립하게 되고 박정희 역시 그 영향으로 10.26을 만난다.

 

셋째, 박정희와 비슷한 유형의 리더쉽을 보여준 싱가폴의 리콴유, 중국의 덩샤오핑,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터키의 케말파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의 예를 상세하게 들면서 박정희의 정치스타일이 그렇게 이상하거나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음을 역설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시대의 필요악이었음을 역설하면서 이제 박정희와 화해할 때가 왔음을 주장하고 있다. 대만의 장개석은 왜 빠졌을까?

 

넷째, 각종 경제지표와 수치들을 예로 제시하며 6070세대의 실질적 성과를 논하였고, 마찬가지로 진보학계에서 한때 반박정희를 강하게 외치던 영향력 있는 학자나 정치인, 언론인들의 전향을 예로 들며 박정희 재평가에 대한 구체적 논거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반박정희 논리의 기반이 되었던 종속이론이나 민족경제론 등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여러 논거를 들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유신 당시에 언론탄압이 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언론계의 대부의 입을 빌어 당시 언론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세에 있었음을 얘기하면서 언론통제가 일부 있었음은 사실이지만 탄압까지는 아니었음을 강변하고 있다. 전두환의 언론통폐합, 기업통폐합과 정말 대비되는 대목이다.

 

다섯째, 그냥 지나치기 쉬운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 시바스 리갈로 대표되는 박정희의 위선적 모습, 경제개발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의 착취 문제 등 첨예한 이슈들 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여지없이 메스를 들고 있다. 아무래도 책의 페이지 수가 수이니 만큼 현대사의 모든 부분을 커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여섯째, 부수적인 것이지만 책이 무척 잘 읽힌다. 기자출신 다운 언어구사력이 돋보인다.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문제거리들을 섬세하고 완곡하게 풀어놓고 있다. 책의 완성도를 떠나 문장 자체는 잘 읽힌다.

 

일곱째, 책 자체가 독후감 제목 그대로 한 편의 대하사극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블록버스터 스펙터클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는 구조다. 때로는 소설, 때로는 다큐멘터리, 때로는 리포트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면서 이야기의 모자이크를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단점도 없진 않은데 글쎄..... 저자가 일부러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를 정도다. 그 많은 레퍼런스를 제시하면서 왜 어떤 부분들은 이렇게 엉성했을까 싶은데 이건 본인이 개인적으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첫째, 뭐니뭐니해도 유신을 중화학공업화라는 빅 푸쉬를 위한 필요악이자 부국강병을 위한 민주주의의 한시적 유보라고만 평가하고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풀어놓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안나오지만 김정렴에 따르면 사실 유신은 박정희가 혁명을 하며 주창했던 민족적 민주주의의 구현으로서 프랑스 대통령제 비슷한 간선제 대통령제로 대통령에게 엄청난 권한을 실어줌과 동시에 간선제를 통해 정치비용의 엄청난 절감과 정치과정의 강력한 효율화를 실현하겠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 절약된 정치비용을 다시 경제발전에 모조리 재투자하고 역시 그 투자로 벌어들인 자금은 다시 경제개발에 쓰이는 무척이나 효율적인 구조로 작동하는 체제로 엄연히 민주주의의 일종인데, 이에 대해 역사적 실례라든가 다른 나라의 사례 등에 대한 풍부한 설명이 빠져있는 것이 안타깝다. 엄연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도 거친 4공화국이라고까지 언급해놓고도 이에 대한 부연 설명 하나 없이 독재였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쉽다. 5.16 혁명의 정당성에 동조했던 장준하가 유신을 적극 반대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 위기의 연속이었던 시대에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구사하면서 유신이 강압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이러한 강압행위에도 최소한의 법적, 정치적 정당성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었으며, 역시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 점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다. 한편, 박정희는 국무회의같은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상당히 민주적이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이 없다. 그저 박정희란 사람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았던 구시대적 인물이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데, 이에 대해선 김정렴의 저작들을 참고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김정렴의 증언이 믿을만 하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다행히 최근 10.26 30주년을 기념하여 김정렴 인터뷰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다.

 

둘째, 박정희의 정보정치, 공작정치의 필연성에 대해 얘기한 것까지는 좋은데 박정희가 그 모든 국가폭력에 대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어디까지가 부하들 책임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긋지 못한 채 박정희 통치 당시의 국가폭력이 모두 박정희의 책임은 아니라고만 말하고 있다. 이 역시 김정렴과 김성진의 회고록 및 여러 사람의 증언을 참조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책의 초점이 박정희와의 화해를 지향하는 만큼 소상히 다루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저자가 말한 것들 말고도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위해 해놓은 일들이 무척 많다. 대역사인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역시 세세한 언급이 없는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그 스펙터클함을 만끽하려면 역시 김성진, 오원철, 김정렴 등의 증언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그럼 이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 소감은? 한마디로 책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오로지 조국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이라는 유토피아만을 바라보며 무한돌진하는 박정희의 꿈과 사랑과 야망과 좌절, 애국심때문에 손에 원치 않는 피를 묻힐 수 밖에 없었으면서도 독재자, 권력욕에 눈이 먼 자로 오해받고 지탄받을 수 밖에 없었던 기막힌 사연 등등이 바로 우리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의 역사라고 생각하니 오늘날의 이명박 정권 치하의 비참한 조국의 현실과 대비되면서 슬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질곡과 가난, 그리고 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했던 박정희, 비록 과도 크겠지만 그 공과 애국심만큼은 오늘날 그야말로 정당하게 대접받아 마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정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저자의 취지에 동참하고자 본인도 최근에 공부한 사주명리로 재미삼아 박정희의 성격 및 인생 행로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사주명리학계에선 최신 기법인 지장간 주권신 분석기법을 적용하였다.

 

박정희는 사주의 구성상 일단 양기가 강해 적극적이다.

 

걷보기에 내성적이고 차가워보이는 이유는 금체질이기 때문인데 정확히는 양의 성질을 띈 금체질이다. 음양오행에서 양금은 원광석이나 무쇠 도끼에 비유될 수 있겠다. 무척이나 크고 투박한 금속이다. 양금의 성질을 지닌 사람은 순도 100%의 혁명가 기질을 타고난다. 의협심이 강하고 불의와 타협을 모르며 맺고 끝음이 확실하고 절도있지만 그만큼 순박한 면도 있고 의리때문에 곤경에 처하기도 쉽다. 하지만 이런 성질이 지나치면 잔인해지기 쉽다. 특히 자기와 뜻이 안맞는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로 타협을 안하고 잔인해지기 쉬워진다. 그래서 끝내 김재규에게 살해당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군인하기에는 최고 좋은 체질이다.

 

금을 도와주는 토 성분이 많다. 전문용어로 편인이라고 하는데, 학문, 예술, 권위, 외국 등과 인연이 많다. 그래서인지 박정희는 위 책에도 언급되다시피, 서예, 수채화, 피아노, 서정시 등등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학문에도 인연이 있어 교사생활을 했고 권위와 연관이 있어 군인을 했으며 외국과 연관이 있어 만주, 일본, 미국 등지를 오간 것이다. 또한 편인은 다재다능과 천재적 능력을 뜻한다. 눈치가 빨라지고 머리회전이 비상해진다. 하지만, 이게 많으면 마마보이가 되거나 나르시스트가 되기 십상인데 박정희는 그런 함정에 빠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편인은 나에게 도움을 주는 성분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선 좋은 조건인데 그래서인지 5.16혁명도 많은 사람들의 지원 속에 무혈혁명으로 끝을 맺었다. 또한 토는 음양오행에서 신뢰를 뜻하는데 그래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다. 국민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면서 늘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고 공무원들에게도 항상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구체적이고 확실한 수치를 제시토록 요구했다고 한다. 이 역시 많을 수록 군인하기에는 좋은 체질이다.

 

화 성분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토를 도와주는 것으로 여기서는 관직을 뜻한다. 그래서 군인, 대통령 등의 관직에 인연이 있는 것이며

 

역마살이 있어 대통령 재직시에 전국을 쏘다닐 정도로 액티브했던 것이다.

 

아까 얘기한 화 성분이 가득한 병오 대운에 혁명에 성공했다.하지만 이런 사주는 음양오행이 주류하지 못하고 심하게 한 쪽으로 편중되어 있는 관계로 대운이 바뀌면 가차없이 추락하게 되는데 경제불황과 오일쇼크, 부마사태 등등의 영향도 있겠지만 79년이 바로 이 대운이 바뀌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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