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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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전히 책의 형태만을 기준으로 한 별점


원서 표지에도 사용된 일러스트를 굳이 버티컬 라인으로 가린 이유를 모르겠다. 처음에는 저작권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레이스케일이긴 하지만 본문에는 같은 일러스트가 그대로 삽입되어 있다. 왜 가렸을까?


촌스럽다고 생각햇을까? 문학동네의 임프린트인 '톨'이 출간한 다른 도서 목록을 살펴보았다. 이우일 작가의 책이 중간에 끼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문학동네라는 이름에 걸맞아 보이는 고풍스러운 디자인들이다. 그래서 일러스트를 가렸을까?


하지만 그 선택 때문에 이 책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원서의 의도와 달라졌다. 촌스러움, 유치함, 잡스러움이 목적인 원저의 편집 의도를 살리지 못 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잡 + 지'인 해외 인디 매거진 맥스위니스의 기획 중 하나로 발간된 단행본이다. 그럴싸한 단편 선집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 그런 내용의 단편들도 아니었을 테고, 그런 느낌으로 북 디자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리뷰 란에 있는 실망 섞인 몇몇 리뷰들이, 출판사가 처음부터 이 책의 포지션을 잘못 잡았다는 사실을 일부 방증 해준다.


둘째, 책이 너무 무거워졌다. 이건 정서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절반 이상은 물리적인 문제를 의미하는 이야기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고급스러운 표지로 위장한 것도 모자라, 고급스럽고 (무겁기 짝이 없는) 번들번들한 모조지로 내지 구성을 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은 독서대에 세우거나 책상 위에 조심스레 뉘여놓고 고심하며 읽을 만한 책이 아니다. 들고 읽을 법한 분위기의 책을 이렇게 두껍게, 그것도 사람 손에 턱턱 감기는 재질로 만들어 놓은 건 독자의 손목이 이기나 책이 이기나 해보겠다는 거 아닐까?


셋째, 책의 표지 재질과 제본도 문제가 있다. 우선 블랙 버티컬 라인(?)은 별도의 딱딱한 재질로 코팅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책의 표지가 부드럽게 휘어지지 않고 중간중간 라인을 따라 스파게티 면이 부러지듯 뚝뚝 부러진다. 이런 라인이 없더라도 책 표지는 결국 구겨지거나 심한 경우 종이가 터지기 마련이지만, 마치 "가이드 라인을 따라 곱게 접어 보세요" 같은 느낌으로 표지 구성을 해놓은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책등은 얼마나 부러지기 쉬운가? 책등 역시 부러지는 게 운명이고 이 정도로 두꺼우면 이라이트 내지를 했어도 부러지긴 했을 거다. 하지만 무겁고 턱턱 감겨오는 내지에, 유연하지 못한 종이 재질에 내지 접착용 풀까지 딱딱하게 굳어있는 두터운 책등이라... "베인이 배트맨 허리 부러뜨리듯이 뚝 하고 부러뜨려 보세요" 같은 제안이 아니라면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지나치게 지엽적인 내용만 지적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이라는 건 결국 물리 매체이고 전자책이 아닌 실물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물 책이 가진 분위기와 물리적인 특성들의 조합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선택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컨셉과는 전혀 맞지 않는 외적인 선택들이 이 책을 '백년 동안의 고독' 양장본이라도 되듯이 조심조심 다뤄야 하는 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꽤나 아쉽다.


이 책을 '그것이 알고 싶다' 보는 기분으로 진지하게 보도록 만든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지 않을까? 작가들이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즐겁자고 온갖 흥취를 잔뜩 넣어 만든 간식을 왜 웨이터가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도록 만들었을까?


하여튼.. 표지 일러스트를 왜 가렸는지부터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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