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교토 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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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갈 땐 그곳을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에는 감정의 깊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장소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모르고 가면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순수한 감정만 납작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장소에 얽힌 역사와 배경을 자세히 알게 된다면 좀 더 깊이 있고 입체적인 감정을 받게 된다. 그런 감정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역사를 품고 있는 유적지나 건축물을 감상할 때 더 그러하다.

 

교토를 아무 정보 없이 유명하더라는 곳을 찾아 두 번 다녀왔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건축물의 형태와 일본 특유의 정원을 감상하는 맛이 있었다. 그러면서 가장 아쉬웠던 이 장소가 어떤 역사를 가졌고 누구를 위한 곳인지 몰랐다는 점과 하얀 자갈이 무늬를 이루며 넓게 펼쳐진 것을 보고 그저 간결하고 멋지다는 감상을 늘어놓게만 되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그것이 마른 산수를 표현한 정원임을 알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정보를 모른채 가면 반쪽짜리 여행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유홍준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장소들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역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니 그곳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결국 읽는 내내 마음 속에는 교토로의 세 번째 여행을 계획하고야 말았다. 알고 보니 놓친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교토가 번성하기 이전 아스카와 나라 시대부터 살펴본 점이 의미 있었다. 그 시절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문화를 융성하기 시작하던 때다. 주요 기술자들이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괜히 정에 끌리게 되어 그들을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들이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결국 그들은 대를 거듭하며 일본인이 되어 일본문화 속에 있기에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닌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한 점이 인상 깊었다. 어쨌든 그 시절 유산들은 굉장했고 멋스러웠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예술성은 누구에게든 위대하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된다.

 

교토의 유명 관광지들을 하나씩 둘러보며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마치 유홍준 선생님과 함께 교토 답사를 따라다니는 기분이 느껴진다. 이야기 중에는 재미있고 멋진 것들이 꽤 많다. 동대사의 대불 주조 이야기, 교토의 3대 마쓰리 이야기, 청수사 창건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 후시미 이나리 신사의 붉은 도리이 터널, 삼십삼간당의 1천분의 천수 관음상, 일본 정원의 역사를 시작한 몽창 소석 국사의 이야기, 용안사의 석정과 관련된 이야기와 미스터리처럼 얽힌 돌의 해석과 관련된 이야기들, 금각사의 북산문화와 은각사의 동산문화를 비교하는 이야기, 시시때때로 언급되는 오닌의 난, 철학의 길과 윤동주, 정지용 시비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엉덩이가 들썩거리지 않을 수 없다. 청수사 부타이에서 내려다보는 교토 풍경을 다시 보고 싶고 용안사의 고요한 석정이 그립다. 정오의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있던 금각사의 화려한 모습도 해 질 녘에 조용히 산책했던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다시 걷고 싶어졌다. 교토 답사를 위한 사전 공부를 단단히 했으니 이제 떠날 용기를 내봐야겠다. 우리 곁엔 언제나 유홍준 선생님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돌이켜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니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된다.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때론 아무 정보도 없이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는 것도 물론 좋지만, 교토라면 역시 답사를 위한 공부를 하고 가는 편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105) 두 번, 세 번 다녀온 뒤 교토에는 그냥 올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공부하고 와서 보아야 그 진수를 맛볼 수 있고, 교토 답사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과서이자 학습 지도서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 출판사 창비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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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값의 비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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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두 번 태어납니다. 화가의 손에서 한번, 그리고 컬렉터의 품 안에서 또 한번 태어납니다. () 컬렉터는 작품의 두 번째 창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림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5)

 

  2013년에 출간되었던 그림값의 비밀이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되었다. 양정무 교수님의 책을 거의 다 읽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 또한 관심이 가는 책이었는데 개정판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 형식으로 책을 쓰시는 편이라서 언제나 즐겁게 읽게 된다.

 

  요즘 '아트테크'가 트랜드가 되고, 삼성가의 엄청난 세금을 이건희 컬렉션으로 가진 그림으로 해결했다는 뉴스를 통해 그림의 거래방식과 그림값에 관해 관심이 가게 됐다. 여기저기에서 아트페어가 열리고 유명 연예인의 영향력이 더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그림이 경매에서 엄청난 금액에 거래되었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최근의 이런 흐름이 반갑다. 그만큼 미술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이런 분위기는 미술시장을 더 크게 성장시킬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매번 궁금했던 질문이 있었다. 그림의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며, 유명 화가의 그림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가 되는 이유가 뭘까?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이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표지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시작한다. 책 표지엔 당당히 달러 표시가 파여 있고 그 뒤로 고흐의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고흐의 그림은 엄청난 금액에 거래가 되기에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오기에 너무 적절한 표지가 아닌가 싶다. 노골적인 표현은 책의 1장에서도 이어진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꽃인 미술에 관해 설명하면서 앤디 워홀의 1달러 지폐 200그림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에서 미술의 본질은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미술사적 의미를 전한다.

 

  양정무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그림값은 이렇게 책정됩니다.’라며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그림값을 형성하는 조건과 관련된 사람들, 환경, 역사까지 총망라하여 그림값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해 차분히 설득한다. 아트딜러와 경매시장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를 아는 것은 그림값에 대한 의문을 푸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성공한 아트딜러는 뛰어난 안목과 자금력, 깔끔한 매너 그리고 인내와 배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림의 가격을 높이는 데에는 이런 아트딜러의 손길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달려 있다. 저자는 세계 최고의 아트딜러 래리 거고지언을 예로 들며 딜러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작가와 딜러가 55 비율로 그림값을 나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딜러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림값의 기본원칙은 제작비와 작가적 능력을 합친 금액으로 책정이 된다. 여기서 작가적 능력을 평가하고 수준을 결정하는 역할을 아트딜러와 컬렉터가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림의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그림값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독특한 구조인 호당가격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림의 크기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인데 이런 구조는 한국과 일본만 사용한다고 했다. 이렇게만 들어도 정말 이상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나라의 호당가격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가격구조를 설명하며 이 체계의 단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호당 그림 가격을 책정한다는 점도 이상한데 한 번 올라간 작가의 호당 책정가는 해당 작가의 모든 작품의 가격을 높인다는 구조도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그림값에 관한 긴 설명 끝에 마지막 장에는 미술 투자에 대한 Q&A가 실려있다. 사실 이 페이지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의 핵심 답변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며 끝까지 흥미를 끌어내는 책이다. 그림을 좋아하고 아트테크에 관심이 있다면 나처럼 이 책을 너무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출판사 창비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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