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이고 개성있는 이야기. 소설인데도 색깔이 느껴진다고나 할까.굉장히 불친절한 책이다. 독자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페이지 가득히 말랑말랑 따끈한 디저트들로 가득 차 있지만 절대 따스한 이야기도 아니다. 읽다보면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책.
평생을 당신은 늘 아내보다 앞서서 걸었다. 어느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모퉁이를 돌기도 했다. 뒤쳐져서 아내가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왜 그리 걸음이 늦느냐고 타박했다. 그러는 사이 오십년이 흘렀다. 아내는 걸음이 늦긴 했어도 당신이 얼마간 기다려주면 뺨이 붉어진 채로 곁에 다가와서는 여전히 좀 천천히 가먼 좋겄네, 하며 웃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한 걸음이나 두 걸음 늦었을 뿐인 그 서울역에서 당신이 먼저 탄 지하철이 출발해버린 뒤로 아내는 여태 당신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