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의 한 방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방울의 물이 되어 세상을 건너다

 

이츠키 히로유키와『대하의 한 방울』. 이 80대 현역 작가의 연륜 만큼 이 책은 묵직한 울림이 있다.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나오키상’을 비롯해 다수의 문학상을 두루 수상한 작가는 백오십 권이 넘는 많은 작품이 말해 주듯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그중 한국에 번역된 작품은『청춘의 문』,『타력』,『대하의 한 방울』,『삶의 힌트』이다. 1966년 첫 소설 출간 이래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대중성 있는 작품도 많이 썼지만 인간 본성과 사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일본에서의 유명세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후 번역서 출간이 늘면서 작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대하의 한 방울』은 1998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가 60대 후반에 쓴 수필이다. 삶, 죽음, 생명, 종교, 건강, 희망 등 인생 전반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생 직후 교사인 부모와 조선으로 건너와 중학 시절까지 조선 곳곳에서 생활한 작가는 패전 후 2년간의 난민생활 중에 어머니를 잃고 가까스로 일본으로 귀환한다. 인생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시선은 귀환 후 두 번이나 자살을 생각한 고통스러운 경험과, 선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부채의식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고 작품 속에서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항상 떳떳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솔직한 고백에 독자는 마음을 열고, 자신처럼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지친 이에게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특히 아시아, 일본의 불교 공부를 한 만큼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도 불교 사상에 기인한 것이 많으며 인간 마음에 대한 고찰이 근저에 흐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으며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다소 절망스러우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느끼게 하는 이 메시지는 대부분의 작품에 크게 자리한다.

 

“우리의 삶은 대하에 흐르는 한 방울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수한 다른 한 방울들과 함께 커다란 흐름을 이루어 확실히 바다로 흘러간다. 높은 봉우리에 오르는 것만을 꿈꾸며 필사적으로 달려 온 전후 반세기를 돌아보면서, 지금 우리는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고 또 하늘로 돌아가는 인생을 그려야 할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은 모두 대하의 한 방울, 다시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우리의 삶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일지라도 다른 수많은 물방울과 함께 마지막까지 조화롭게 흘러야 한다. 이 주제에 대해 작가는 힘주어 말하는 방법을 피하고 낮은 울림으로 독자의 가슴을 흔든다. 작가가 말하는 생로병사의 모습이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진부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커다란 힘을 의식하며 하루하루 소망을 가짐으로 인간은 조금 더 나은 동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독자 나름의 방식으로 공감할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 공허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상실한 우리에게 멈추어 뒤도 돌아보라는 작가의 해법은 위로가 된다.

노(老)작가의 인생관이 녹아 든『대하의 한 방울』. 가까이 두어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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