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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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꿈이나 열망은 그 규칙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이어지기도 한다. 새소녀와 다구에게는 그런 꿈이 있었다.


새소녀는 사냥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고, 다구는 사냥하며 부족을 지키는 대신 전설 속의 땅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지나치게 멋진, 아직 타인들이 생각지 못한 꿈을 가졌던 젊은이들이 겪게 된 고난과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남다른 꿈을 꾸었기에 외톨이가 되어야 했고, 꿈을 이루기를 택했기에 남들은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을 하며 홀로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비교했을 때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던 꿈을 쫓기로 한 선택이 마냥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은 씁쓸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꿈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인 벨마 윌리스는 지은이의 말을 통해 '이 이야기의 요점은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이유로 고향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부족으로 돌아오지만, 나는 자꾸만 그 후로도 두 사람이 계속해서 자신만의 미래를 그릴 것이라고 믿게 된다. 오랜 방랑과 역경 끝에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을 두 사람은 그 후로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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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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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6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둔 채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한 두 여성, 앨리너(넬리)와 앨리스의 이야기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 레시피처럼, 앨리스는 넬리가 집안에 남겨두고 간 레시피와 흔적을 더듬어가며 넬리를 이해하고, 또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때로, 역사는 되풀이되곤 한다라는 문장은 이미 이 책을 수식하는 데 여러 차례 쓰인 듯하다. 앨리너와 앨리스, 애칭으로는 넬리와 앨리. 이름마저 비슷하게 느껴지는 두 여성의 삶은 챕터가 교차함에 따라 비슷하지만 다른 궤적을 그리며 흘러간다. 넬리의 남편인 리처드로 대표되는 (60년 전에는 이상할 것이 없었던)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앨리스의 남편인 네이트로 대표되는 현대의 가족상 역시 대비되는 듯하면서도 뜻밖의 지점에서 교차하며 두 가정이 어떤 갈등을 겪게 되는지를 묘사한다.


이러한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시 비밀이 아닐까 싶다. 넬리의 비밀, 리처드의 비밀, 앨리스의 비밀, 네이트의 비밀. 각자의 이유로 상대에게 숨겨야 했던 비밀이 얽히며 이야기를 더욱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책의 뒤쪽 표지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오직 입으로만 전해져야 하는 게 있단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런 이 말이 무색하게도 넬리와 앨리스의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단은 입이 아닌 글이다. 넬리가 남긴 레시피와 편지, 그리고 앨리스가 쓰는 글. 두 사람은 글을 통해 꼭 필요하고도 은밀한 어떤 것들을 공유하게 된다.


작중에서 앨리에게 힘이 되는 여성은 전화로 몇 차례 등장하는 엄마가 아닌 딸이 없는 두 여성 - 60년 전 저택의 주인인 넬리와 이웃집의 샐리 - 이라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다.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넬리에게 힘이 되었던 여성이 샐리의 어머니인 미리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자기만의 레시피를 전해주는 일은, 모녀 관계를 벗어나 이전 세대의 모든 여성과 다음 세대의 모든 여성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찾아내고 정의하는 이야기다. 넬리의 선택과 앨리스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 혹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으나 두 사람은 기나긴 이야기의 끝에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고군분투를 마무리한다. 앨리스의 입장에서는 고군분투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60년 전에도, 지금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을 찾아 나서는 일일 것이다.

날짜로 보나 계절로 보나 꽃을 심기에 너무 늦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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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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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집에는 서문당에서 나온 컬러백과 서양 미술 시리즈가 있었다. 샤갈, 모딜리아니, 고야, 쇠라.. 낯선 이름의 나열 속에서 한 권을 골라 페이지를 넘기면 나오는 형형색색의 그림들에 홀린 듯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미술관을 좋아하게 된 것에는 그때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유럽에서 미술관을 방문에 작품을 감상할 때면 인쇄물로만 보아왔던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에서 오는 두근거림이 느껴지면서도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에 대해 잘 몰라 놓치고 있는 것이 많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이야기, 그 시대의 이야기,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과 그 시대의 역사가 얼마나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이야기하는 <벌거벗은 미술관>이라는 책의 소개를 발견하고 흥미를 느꼈던 것도 이러한 경험의 연장이었다.


<벌거벗은 미술관>은 크게 네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첫 장에서는 고전 미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고, 두 번째 장에서는 초상화 속 인물들의 표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룬다. 세 번째 장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 발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네 번째 장에서는 팬데믹이 예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저자는 책 속에서 영국의 역사학자 E.H.카의 말을 인용한다. 역사는 과거의 시점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코로나 판데믹과 흑사병, 스페인독감 등 역사 속 인류가 마주했던 전염병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술의 발전 속에서 판데믹이 어떤 변곡점으로 작용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고, 코로나 판데믹 이후 인류의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게 될 것인지도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와 미술 작품들은 먼 미래에 어떻게 읽히게 될까? 아주 오랫동안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복제본이 그리스의 고전 미술로 여겨졌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해석이 정설로 자리잡아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다루었던 작품들 중에는 새롭게 알게 된 작품도, 이전에 본 적이 있는 작품들도 있었다.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바라보면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자꾸만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을 보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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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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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들의 눈에서 악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 아들은 백일잔치를 8일 앞두고 있었다."

에세이의 시작에서 저자는 소실된 기억과 함께 정신병원에서 눈을 뜬다. 이후로 이야기는 저자가 정신병원에서 바라보는 풍경, 조금씩 되짚어나가는 과거의 기억들을 오가며 이어진다.

저자는 아주 아득한 과거, 유년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기억을 모아 잇는다. 유년시간의 행복하거나 불행했던 기억들, 한국의 문화가 저자에게 남긴 것들, 사랑의 실패와 탈출, 그리고 새로운 동반자와의 만남과 아이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삶은 숨가쁘게 달려간다. 사랑에서 기반된 각종 감정이 넘실대는 과거의 회상과, 가계도를 채우지 못하고 빈 노트 앞에서 곤란해하는 저자의 현재가 대비되며 교차된다.

이 책의 부제는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이다. 내가 받은 가제본의 마지막 문장은 "케이토(태어난 아이의 이름)는 우리의 행운의 부적이었다" 였다. 보지 못한 한 달 여의 시간 동안 저자는 무엇을 겪었고, 아이의 눈 속에서 어떤 지옥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병원에 머무는 저자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이어져나가게 될까.

한국계 미국인 여성. 삶의 한 단편으로 남아 있는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의 기억. 산후정신증과 정신병원. 상호간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다가도 아주 밀접하게도 느껴지는 것들이 촘촘히 얽혀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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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와 혐오 -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재클린 로즈 지음, 김영아 옮김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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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유로 처벌받는 동시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것을 요구받는다(p130). '어머니'를 향한 숭배와 혐오를 이보다 더 간단히 표현하는 문장이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모성은 숭고하면서도 극악스러운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모성이라는 단어 앞에 선 한국인은 흔히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 또는 '극성맞은 엄마들의 치맛바람'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엄마 자격도 없다는 수식어가 수많은 어머니들에게 너무도 손쉽게 붙는다. 그렇다면 '엄마 자격'이란, '모성'이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그리스 시대의 어머니들에서부터 시작해 현대 영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서구의 역사를 따라가며 모성에 대해 말한다. 책은 과거와 지금 어머니를 향한 시선과 사회적인 처벌을 논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증오하는 어머니의 심리적 맹목에 대해 논하고, 어머니가 겪는 고통과 희열에 대해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일견 당연히 여겨졌고, 또는 기이하게 여겨졌던 어머니의 여러 행동이 심리학적으로 분석된다.


붙잡고 씨름해야 할 자신만의 무언가가 없는 상태-자신만의 내적 삶을 희생해 오로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는 상태-야말로 어머니 되기의 정의이자, 적어도 암묵적 의제라고 할 수 있다(p248)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덕목과 모성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실패에-필연적인 실패임에도- 고통받는다. 한편으로 어머니는 자신에게 기대된 완벽함에 대한 요구를 자신의 아이에게 전가한다. 혹은 자녀를 자신의 자아실현의 도구로 이용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머니는 필패한다. 무엇에든 결코 폭발하지 않는, 모성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지 않는, 아이를 향한 증오와, 어머니라는 존재의 성적 욕망의 존재가 지워진 채로 괴로운 사회와 세상을 구원해야만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어머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이처럼 이상화된 모성의 그림자에서 꺼낼 수 있을까.


저자는 책 말미에서 "현대 세계가 어미니에게 부과한 최악의 요구이자 가장 견딜 수 없는 요구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어머니 위에 펼쳐놓은 달콤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머니에게 광범위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괴로움을 무효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나는 이 책을 쓰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p242)"라고 말한다.


저자가 거듭 말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머니는 공적이고 정치적인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다. 숭배와 혐오 사이에서 여성을 '어머니'라는 존재로 가두는 지금의 사회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더욱 많이 발화되어야 한다. '어머니답지 않아서' 감추어야만 했던 이야기가 더욱 가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어머니인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선량한 것도, 더 창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일을 하기로, 다른 삶을 살기로 선택했을 뿐이다.(p110)" 우리가 시작해야 할 곳은 여기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머니가 미래를 바라보고 책임져주길 기대하는데(그밖에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천진난만하기만 한 그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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