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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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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구는 기본 입자의 이론(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작은 것에 대한 연구)을 중심에 두고, 때로는 끈 이론과 우주론(가장 큰 것에 대한 연구)까지도 뻗어 나간다. 동료들과 나는 물질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주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가, 실험가들이 발견한 기본적인 물리량들과 성질들이 모두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등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중략) 그러나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이 중첩되는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물리학자들이 꿈꾸는 미래의 물리학이 어떤 것인지, 바로 그 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세계 최정상급 여성 물리학자 ‘리사 랜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입자 수준의 단위에서 은하 수준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관찰하고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스케일’이 존재합니다. 이 스케일에 따라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스케일이 달라지더라도 보존되는 성질이 있는 반면에,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를 발견하고 관계를 찾아가는 과학자들의 사고를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3부와 4부 같은 경우는 일반 과학 상식 수준을 벗어난 용어들이 사용되었으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실험에 대한 소개와 장치들을 다루고 있기에 일반인들이 읽기엔 조금 괴리감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흥미 있게 살펴본 3가지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1. ‘중력파’의 발견과 역사 속 과학적 사고의 전환 - 2장 잠겨 있지 않은 비밀

2016년 2월은 과학계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중력파’ 발견이 공식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블랙홀이 중력할 때 발생하는 파장이다.’라는 설명은 전문적으로 과학계에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고의 전환입니다.

 

지구의 역사가 이어져 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꾸준히 발전해왔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 까진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이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500년 전 갈릴레오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할 때에는 언제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모형으로 삼았습니다. 항상 믿음 아니면 직접 관찰한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갈릴레오는 과학연구에 실험을 채용함으로써 순수한 사고와 추론의 한계를 넘어섰고, 그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도구와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세계를 보이는 대로만 관측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선 것입니다. 다윈이 등장하기 전까진 인간을 신의 창조물로 바라보았지만 어느덧 지구에서 생존을 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다양한 논란이 있고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 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이런 발견들은 우리의 사고체계를 완전히 뒤바꿔놓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 역시 그런 하나의 전환점이라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 지 우리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쉬울 뿐 입니다.

 

2. 끝나지 않는 논쟁. 과학과 종교는 양립 가능한 것일까? - 3장 물질 세상에 산다는 것

‘그러한 외부 영향(신)이 있다는 생각이 종교 고유의 것이라면, 논리적, 과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그 영향을 이 세계에 전달하는 매커니즘이 있어야만 한다고 따져 물을 것이다. 인간의 행위와 행동이나 세계 자체에 영향을 끼치면서도 보이지 않고 감지되지 않는 힘을 인정하는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믿음을 고수하려면, 종교인들은 믿음을 가지는 대신 논리를 포기하거나, 그저 무시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세계가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은, 신이 세계를 이상적인 곳으로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론들을 통해서 과학과 종교가 불화를 겪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책의 제3장 <물질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과학자와 종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관계가 왜 생기는 것인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둘은 양립할 수 있는 관계인지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양립 가능하지만, 양립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작가는 과학과 종교가 다루고 있는 방법과 목표의 차이에서 찾습니다. 과학은 물리적 실재를 추구하고 종교는 심리적 혹은 사회적인 바람과 필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서로 인정하고 논의를 하게 되면 양립 가능한 것이지만, 이 출발점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 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게 되면 언제나 논의는 제자리걸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목표의 차이가 대립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과학적 사고면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을거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의 계시에 따를 것일지니.'와 같은 사고는 세상 작동원리를 '유전자'의 생존욕구 하나로 설명하는 <이기적 유전자>식의 사고와, 모든 사회의 작동원리를 '자본'을 쟁취하기 위한 대립관계로 설명하는 <자본론>적 사고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고 염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단 한가지만을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것 입니다.

 

3. ‘창조성’이라는 ‘재능’에 대하여 - 22장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라

 

“영감은 시에서 필요한 만큼 기하학에서도 필요하다.”라는 세르게예비치 푸슈킨의 말을 본문에서 인용합니다. 예술과 인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입자 물리학, 우주론, 수학, 그리고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모두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대학시절 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같은 정의(Definition)와 정리(Theorem)를 공부하면서 각자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수학을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제게는 이런 영감과 직관이 부족했기에 상대적으로 이른 포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결정을 저는 너무나 잘 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영감의 차이는 타고난 재능이라 보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창조성과 재능이 타고났다는 주장에 의문 부호를 찍고, 성공 요인이 재능을 조기에 발굴해서 갈고 닦는 데 있다 주장하는 경향이 가능해 집니다. 대표적으로「아웃라이어」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를 빌려오자면 빌 게이츠의 성공은 그의 추진력과 재능보다, 자라오면서 속해 있었던 특별한 기회로 가득한 환경 때문이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다양한 사례들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그는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그렇게 열심히 집중해서 일을 했으며, 학습과 수련을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사 랜들은 천재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인 ‘창조성’을 하나의 노력의 산물로 바라 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통찰력을 ‘직관’의 산물로 생각하지만, ‘직관의 계시’가 내리는 순간의 이면에 연구에 쏟아 부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가 쓴 <우연에서 기적으로>라는 책 속에 소개된 일화가 있습니다. 책 한 권 읽지 않는 다는 김태원과 책과 글 속에 파묻혀 사는 이외수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야기가 전혀 막힘이 없으며 서로의 이야기가 통하기까지 했습니다. 극과 극은 언제나 맞닿아 있으며, 서로 통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이들은 다른 분야의 정점에 오른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참 오랜만에 과학 서적을 손에 쥐었습니다. 과학자가 전하는 이야기가 별 거 있겠냐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장 과학적인 곳에서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찾아가는 그 모습이 사뭇 진지하기 까지 했습니다.

 

‘과학 분야건 아니건 간에 진전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열쇠가 되는 요소 중 하나는 스케일에 대해 아는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스케일에 따라 관찰되고 이해된 것을 범주화해서 우리는 물리학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멀리까지 나아갔다. 스케일의 단위는 물리적 스케일일 수도 있고, 인구 집단일 수도, 시간 틀일 수도 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정책 지도자들도 역시 이런 개념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가졌던 ‘과학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을 새우고 그것을 증명해 나가는 선형적인 사고로만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스케일’이라는 개념을 알 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관점의 변화가 되는지 역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라는 격언은 아주 과학적인 사고였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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