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옛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특히 요즘 시대엔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멋들어지게 소개하고, 포장을 해서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조금 해보면 그 기대보다 덜한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이 그들을 기대감 있는 인물로 만들었던 것일까? 그런 부분을 콕 집어서 잘 소개해준 책이라고 본다.

 

나는 과거 “지나치게 쾌활한 아이”로 불렸었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극도로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향성 평가를 해보면,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성격의 스펙트럼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아주 넓은 편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데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이 점은 나에게 아주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혼자서 하는 작업도 아주 좋아라하고, 독서모임같이 함께 하면서 소통하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200명이 넘는 조직을 이끄는 것도 무리 없이 나서서 잘 수행하며, 혼자서 감당하고 견뎌내야 하는 고독도 상대적으로 잘 견뎌내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내향성은 20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강화되어간 느낌이 적잖아 있으며, 군대에서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더욱 개발이 된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닮고 싶어서 흉내 내었던 이들은 이상하게도 전부 내향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닮고자 노력을 아무리 하여도 한계가 있었고, 항상 갑갑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지금 개인적으로 드는 느낌은, 그들은 내향성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고, 나는 외향성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던 이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같아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나만의 색깔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시기에 도달한 것 같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을 접하면서 나의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20세기에 들어 성격의 시대, 개성의 시대가 오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문화적으로는 서구의 주체사상이, 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 도래가 절묘하게 결합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서양사회의 공동체는 주체위에 성립된 공동체이다. 따라서 각 개인의 인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인권이 자본주의와 결합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노동력은 상품을 생산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해낼 수 있는 이들이 각광받게 되었고,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물이 중요시되면서 자연스럽게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이들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자본주의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존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에게 매력인 사람으로 보이려 노력하는 중이고, 셀프 브랜딩이라고 하며 자기PR을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스스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지만 알릴 수 있는 그런 존재인 것인가? 본디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인정이라는 것을 내가 먼저 나서서 ‘나 좀 인정해주세요~’ 라고 해서 인정받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정받을만한 수준과 실력을 갖춘다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이 사람 아닌가?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갔던 것처럼 말이다. 분명히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확연한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방형 혁신 등을 주장하면서 집단지성이 필연적으로 개인의 지성을 앞지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처럼, 왜 우리는 끊임없이 외향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외향적 사고마저 요구받는 것일까? 과연 외향적사고가 반 고흐를, 뉴턴을, 간디를, 스티브 워즈니악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그렇진 않다.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결론은 결국 사람이 소비재로 전락하면서 나타난 아주 깊은 폐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비재가 아니다. 재화가 아니다. 그냥 존재 자체일 뿐이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상대방도 위대한 또 하나의 존재이다. 그런 우리가 함께 만나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를 훈련시키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자신을 그대로 받아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러기가 참 어려워진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자신을 성격의 시대에 맞춰 억지로 외향적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 숲속으로 들어가서 오두막집 하나짓고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넓혀지고 있으며, 함께 잘 살기 위한 다양한 생각들이 모색되고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개인. 고독은 창의성의 필연적인 원료가 되듯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는 조금의 버팀이 필요할 것 같다. 나의 고독의 힘을 믿고, 나를 믿으며.

 

 

“순수하게 내성적이거나, 순수하게 외향적인 것은 없다” - 칼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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