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산문선 우리고전 다시읽기 45
구인환 엮음 / 신원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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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그래서 그냥 씹어 삼켜 버리려고 했다. 우걱우걱. 하지만 그 마저도 실패했다. 씹어 삼켜 버리는데 필요한 내공조차도 부족했다. 그랬다. 이 글을 써내려간 이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였던 정약용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어렵게 다가왔을까? 왜 그렇게 책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그 이유로는 첫째. 18세기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한국사에 대한 공부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기에, 이과를 선택하면서 역사는 선택조차 하지 않았기에,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이름을 들을때 ‘아 맞다!’라고 떠오르는 수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쉬이 읽기만 한다면, 그저 당연한 말들을 늘어놓은 글자들의 집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이런 고전을 읽을때 제대로 읽기 위한 그 첫 번째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선 그런 생각과 기술이 나타나게 된 이유를 파악할 수가 없고, 그 내용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알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당시 백성들이 겪고 있던 다양한 어려움들을 양반 집안의 자손으로서 이해하고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을까?

 
둘째. 아주 높은 수준의 논리적 기술서였다. 아들에게나, 이인영에게나, 임금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글. 어떤 형식의 글을 쓰더라도 논리 구조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시대적 상황, 상대방의 상황 또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그것에 대한 비판, 그냥 비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명확한 대안 제시, 이를 통해서 얻게 될 에상 도출 결과까지. 4단 구성이라는 형식적으로 완성 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냥 자신의 생각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다양한 지식인들의 글을 통해서 배운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완전한 논리 흐름으로 인하여 나는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당연한 말을 늘어만 놓고 있지? 라는 역설적인 이해에 빠지기도 했다. 그 만큼 정약용의 생각이 이해에 밝고 민주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뒤의 내용을 현 시대로 끌고 들어온다면, 아이디어 공모전의 기획서라고나 할까? 상금 꽤나 많이 벌었을 것이다.

 
셋째. 책 구성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을까? 아니면 이것도 다산 정약용의 박식함 때문일까? 너무나 다루고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 정치부터, 기술, 사회제도, 다양한 이념들의 근본에 대해서 우리 삶 전체를 다루고 있다. 이는 그의 500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에서 볼 수 있다. 18년간의 유배지 생활마저도 자신에게 학습을 하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고 방대한 지식을 집대성 할 수 있었던 그의 삶. 일상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이었기에 그의 삶이 묻어나 있는 글을 통해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일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놀라웠던 사실은, 정약용이 바라보고 질책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다양한 정치 및 사회제도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정치며,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며, 인류는 언제나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쩜 이렇게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런 만큼 정약용의 생각을 지금의 시대에 맞게 옮겨 표현한다면 우리 삶에 많은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온전히 세운다는 것은 참 어려우며,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목표로 해야 하는 업이라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정약용의 삶은 정말로 깊이 존경할 만하며, 지식의 잣대로 칼을 휘두르지 않고 널리 이롭게 쓰고 하는 부분에서 내가 살아가고 하는 삶의 모습에 많은 귀감이 된다.

  

“시(詩)라는 것도 끊임없는 학습의 기초가 완료 된 후에야, 비로소 안개 낀 아침과 달 발은 밤, 짙은 녹음과 보슬비 내리는 것을 보면 그 서려 있던 감흥이 격동하며 표연한 시상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음조와 선율이 유창하게 우러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 세계의 생동한 경지이다. 나의 이 말을 실제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이렇게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한 번 자기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을 터뜨려 놓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일러 ‘문장(文章)이라 한다. 이런 것이 참으로 문장이다.”

 
나는 정약용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삶 속에서 흔히 쓰던 그 한문장의 의미를 뼈저리게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그 시작점을 찾은 것 같다. ‘지식을 토해낸다.’ 도저히 도저히 그 속에 담아둘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토해낼 수 밖에 없었던 그 경지. 학습하기를 멈추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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