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1. 수용소 문학의 정점, 헤르타 뮐러 「숨그네」

“소설 창작에서는 사건 중심인 추리 소설을 플롯이 이끄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 반대편에 동기를 중요시하는,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는 플롯이 이끄는 소설과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 김연수 「소설가의 일」中

 

이 작품은 망명한 시인이자 실제 수용소 생존자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구슬을 토대로 헤르타 뮐러가 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증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입니다. 2차 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 된 열일곱 살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밀도 있고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개인적 선호를 따지자면 사건의 전개 속에서 주인공이 심적 갈등을 겪고, 이를 통한 내적 성장을 보여주는 ‘캐릭터 중심’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숨그네>는 제가 좋아하는 성향의 작품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써졌지만, 반 이상을 그와 함께 생활하는 수용소 내부의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자 시점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소재는 풍부하며, 다양하게 발견되는 현실 순응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무기력함은 한층 더 깊게 전해집니다.

 

2. 간접체험만으로도 느껴지는 수용소 생활의 잔혹함

그녀는 우리에게 수용소라는 곳의 잔혹함을 이렇게 전합니다.

 

“뼈와 가죽 배설되지 못한 수분이 삼위일체가 되어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사라졌고 성(性)은 퇴화했다. 그 혹은 그녀라는 말은 썼지만 저 빗이라든가 그 막사라고 할 때의 지시어와 다를 바 없었다.”

 

성이 사라진 채 욕구만 남아 있는 곳, 배고픔 앞에선 먹을 것이 그들의 기준이 되어버렸으며,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더라도 태연하게 대처할 뿐인 공간입니다. “삽질 1회 = 빵 1그램”으로 표현되는 노동의 무게 또한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주인공 레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수용소 안에서의 삶의 무게는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인해서 더욱 무겁게 전해집니다.

 

예전에 읽었던 마르틴 그레이의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수용소를 탈출하기 위한 역경과 고난을 너무나 잘 표현했기에 개인적 선호로는 상대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숨그네」속에서는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수용소로 돌아오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한층 더 깊은 시름과 절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수의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웅적 탈출기가 아닌, 다수가 보여줬던 치욕적인 현실 적응의 모습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수용소라는 공간적 특징에 더욱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3. 조어(造語), 그녀만의 작품색을 견고히 만들다.

‘숨그네’, ‘볼빵’, ‘하조베’, ‘배고픈 천사’ 등 그녀는 작품 속에서 독특한 조어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력은 루마니아어와 독일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작가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위가 조여든다. 그 느낌은 점점 올라와 입천장에 닿을 것 같다. 숨그네가 공중을 한 바퀴 돌고, 나는 헉헉거린다.’

 

다양한 조어 중에서도 가장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말은 제목이기도 한 ‘숨그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야기를 펼쳐가는 것에 있어 이 단어는 ‘배고픈 천사’라는 말 보다 오히려 비중이 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작가는 이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했을까에 대한 의문을 우리는 가져볼 수 있습니다.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수용소 안에서의 삶은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합니다. 배고픔, 추위, 극심한 노동 속에서 나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매 순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계인의 삶이라는 상황을 작가는 ‘숨그네’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4. 수용소마저 그리워하게 되는 한 사람의 인생

‘수용소는 마음속의 소망을 박탈했다. 누구든 결정할 필요도, 결정할 의지도 없었다.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기억이 그 바람을 뒤로 밀어두었다. 감히 그리움을 앞세울 수 없었다. 기억이 이미 그리움이라고 믿었다. 머릿속에 항상 똑같은 장면이 돌아가고 세상과의 격리가 익숙해지면 그리운 것은 기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과 단절되었던 시간은 사회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격리시키기 시작했으며, 가족 구성원들과의 삶마저 단절 시켜버렸습니다. 수용소의 경험이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아마 이런 순간이지 않을까합니다. 세상으로 돌아왔고 자신에게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알지 못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 낸 수용소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밀란 쿤데라는 말 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헤르타 뮐러 역시「숨그네」속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간은 산다. 단 한 번만 산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 지어져버린 개인들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모습과 현실 앞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 자체가 큰 사치이고 결례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한번뿐인 내 삶의 중요성’입니다.

 

5.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 소설가 김애란

소설가 김애란은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에서 이 작품을 읽고 이렇게 얘기 합니다.

 

‘가스계량기가 있는 나무복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 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살면서 우린 많은 일을 겪게 되겠지요? 그중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테고요. 지저귀듯 노래하며 시를 읊을 시절도, 기도하듯 무릎 꿇고 말을 줍는 순간도 있을 겁니다. 『숨그네』는 한 인간이 처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허기와 고통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거기서 사람이 만든 말이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어떤 일을 돕고 있는지 목격하는 건 이제 여러분의 몫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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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마주하고 목격한 것은 삶이라는 것에서 격리 당한 이들이 그려내는 삶의 모습입니다. 극한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때로는 수용소 바깥의 세상보다 더욱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모습마저 보입니다. 생존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기에 인간으로서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도리가 그들의 삶의 규칙이 되기 때문입니다.

 

책은 덮은 후 저에게 질문을 한 번 던져봅니다. 자유라는 것을 대가없이 누릴 만큼 너는 삶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지. 지금의 나의 모습은 한쪽으로 치우쳐진 숨그네를 타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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