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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과 귀환이주 ㅣ 아산재단 연구총서 389
서장원 지음 / 집문당 / 2015년 8월
평점 :
* 책 ‘망명과 귀환이주’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망명연구는 사회적 현상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문제, 특히 인간안보에 관한 연구라는 점을 직시한다면 해당된 망명객의 진지한 증언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어야 한다.”(책 474p)
이 한 문장은 책 ‘망명과 귀환이주’의 기본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저자는 광범위한 망명과 귀환이주의 역사 중 20세기 독일역사에서 발생한 ‘망명과 귀환이주’-더 정확히 말하자면 망명으로 인한 귀환이주-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기본뼈대에 살을 붙여나간다. 다시 말해 20세기 독일의 정치적 사회적 발전과정뿐만 아니라 그 당시 역사의 수레바퀴가 매몰차게 굴러감에 따라 옆으로 튕겨져 나온 대표적인 망명객 세 명(칼 추크마이어Carl Zuckmayer, 레온하르트 프랑크Leonhard Frank, 한스 잘Hans Sahl)의 망명·귀환이주경험과 그들의 자서전에 기록된 살아있는 증언을 중심으로 이를 통해서 드러난 인간과 사회의 문제점이 이 책의 주요내용이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으로 아직 전 세계적으로 초보적 단계에 놓여있는 망명과 귀환이주연구를 위한 ‘방법론 개발’-이는 학문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작업임을 잊지 말자-과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쳐 온 한반도에서 발생한 망명과 귀환이주에 관한 연구에 학문적 토대를 다지기 위함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참고로 책의 첫 번째 장인 1장과 마지막 장인 8장에서 저자는 한반도의 역사와 이승만, 김구 등과 같은 저명한 망명객들을 예시로 들며 우리나라에서의 망명연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본 책을 읽을 때에 우연히 보게 된 ‘박정희 시대의 망명객’에 관련된 기사가 있는데, 함께 읽어보면 망명연구의 필요성을 더욱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첨부한다. 프레시안- 박정희 최측근 이후락·김형욱은 왜 도망쳐야 했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8560 )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기술하는 것은 생략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필자의 능력부족일 수도 있거니와 책의 특성상 이미 어느 정도 요약이 가해진 내용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단순한 사실 기술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요 연구결과물인 귀환이주의 세 가지 유형에 대해서는 그것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총 3기로 나누어지는 귀환이주의 유형에는 1기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에, 다시 말하면 군정지역으로의 귀환이주한 망명객, 2기 1949년 이후, 즉 분단된 국가로 귀환이주한 망명객, 3기 “군정지역으로 귀환이주한 망명객도 아니고, 분단국가로 귀환이주한 망명객들도 아닌 ‘눈에 띄지 않는 귀환이주’ 망명객”(책 579p~580p)이 있다. 1기 귀환이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칼 추크마이어, 2기 귀환이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레온하르트 프랑크, 3기 귀환이주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스 잘이 다뤄진다.
그들은 1933년 나치정권 등장 이전에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었거나 각광받기 시작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후 자신들의 고향 독일로 귀환하고 나서는 처음에는 주목을 받다가 점차 잊혔거나, 처음부터 환대받지 못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로서 그들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이 망명지에서 경험했던 것뿐만 아니라 돌아온 고향에서 경험했던 그 당시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를 적어나갔다. 그들은 소속감, 집단주의, 집단적 죄의식과 과거사 청산, 전쟁반대 혹은 평화주의, 지성인의 역할, 앞으로 독일의 미래 등의 문제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책 중간 중간에 발췌된 그들의 글과 저자의 해설을 읽다보면 그 경종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울리는 것만 같았다.
* 책 ‘망명과 귀환이주’의 2가지 특징
(1) 입체적 구성: 입체적 구성이라고 함은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기술하여 대상의 모습을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으로 나타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여 상하좌우전후의 시선으로 정육면체의 모든 면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특히 이러한 입체적 구성의 특징은 ‘망명’의 의미를 정의하는 부분(2장)에서 두드러진다. 저자는 망명의 의미를 어원학적 법학적 역사적 개인사적 관점 등 여러 측면에서 조명한다. 이 과정은 마치 예술가가 조각상을 조각하는 과정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구성의 특징상 망명의 정의를 ‘A란 B다’처럼 ‘전과식’으로 규정짓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단번에 그 개념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학문적 혹은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문적 혹은 객관적이라 함은 누구든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함으로, 다양한 관점이 그것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책 전반에 걸쳐 관통해있다. 따라서 이 점을 유념하며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2) 넓은 스펙트럼: 책에서는 발저-부비스논쟁, 망명자로서의 하이네, 분단된 독일의 국가, 68혁명, 제국의회방화사건, 봐르트부르크 축제와 분서사건, 히틀러 충성고백, 뮌헨 소비에트공화국, 소비에트 대학살 혹은 대숙청 사건, 괼릿쳐 협정, 등 뒤에서 칼 찌르기 전설(Dolchstoßlegende), 화학무기전쟁, 폐허여성(Trümmerfrau), 아데나워와 슈마허-여우와 늑대 비유, 빌리 브란트의 통일정책,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등 단일연구대상으로서도 손색없는 다양한 주제들이 망명과 귀환이주라는 주제와 맞물려 언급되고 설명된다. 독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관심이 갈만한 주제들이다. 이 책 한권만 읽더라도 20세기 독일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저자가 아직 미완성이라고 책 서두에서 밝힌 제 7장 ‘구역 밖으로의 귀환이주’가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저자의 다른 저술활동들도 어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