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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평점 :
[한끼 때운다고? 부끄러운 줄 알아_나 홀로 미식
수업/후쿠다 가즈야/흐름출판]
감히 말하겠다. 먹는 일을 스타일로 생각하지 못하는
자, 이 책을 열지 말라. 둘 중 한 가지로 반응이 분명해진다. 열 받아서 책을 집어 던지고 싶어지거나, 한 번 이렇게 살아 봤으면 좋겠다로.
나의 경우는 정확하게 전자의 반항심으로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디 한 번 끝까지 해보시지."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이렇게 서평까지 쓴다고
두들기고 있다
고단샤 에세이 상까지 수상한 저술가의 책이라 기대를
가졌다고 고백하겠다. 하지만 가즈야씨도 자평한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유혹과 함정에 빠지지 않고 컨디션을 유지했다는 성취감이 기성복 같은 식사가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는 우월감과 얽혀서 정말 맛있게 만찬을 즐길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저란 인간은 정말로 밉살스런 인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가 정말 밉살스러웠다.
책을 내려놓지 않았던 것은 끈기 있게 미식에 대한
세계를 펼치는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른다 . "먹고 마시면서 대화는 생기를 더해 갔다.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가즈야씨는 빵 하나로 점심을 때우는
것은 정말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로 평가했지만 그의 주장처럼 "매일 무엇을 먹는가, 어떤 식으로 먹는가에 의식을 갖는 일"은 삶의
단편으로 인생을 들추는 듯 하다.
신에게 삿대질하며 본능에 충실한 조르바도 외친다.
"먹는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혹자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음식을 보는 순간 스마트 폰 부터 들이대는 이들에게
그는 도전한다. "살아 있음 그 자체의 기쁨을 실감하며 먹는 일에 대해 나름의 태도를 가지라." 가즈야씨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밉살스런
미식체험 뒤에 숨어있는 속내를 보물찾기 놀이처럼 제안해보는 것은 아닐까? 미슐랭 별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이들에게 욕먹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던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심오하다. "요리의 세계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들어지고 세련되어졌습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만 일정한
미의식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미의식은 앞서 말씀 드린 문화적 축적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미의식에 도달하려면 초일류의 것을 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초일류는커녕 삼시세끼 집 밥 이라도 제대로 먹으면
다행인 형편인데 이 책을 왜 읽겠냐고 한다면, 세계 명화 한 점도 실제로 보지 못했지만 미술관은 쉽게 드나드는 마음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미술책에 인쇄되어 있던 고흐를 보려고 돈을 쓰며 바다를 건너가 실제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이 만족감이 그의 미식 수업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그의 주장에 들썩이던 반항심은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보려는 욕망은 나도 만만치 않음을 고백하고 비로소 잦아들었다. 더구나
테이블 매너라는 불편한
소재로 자유에 대한 소신을 펼 수 있는 그의 자신감은 삶의 모든 부분에 진지한 성찰과 태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후한 점수까지
줘버렸다
" 오랜 세월을 거쳐 다듬어진 테이블 매너란, 다양한
타인들과 함께 있을 때 질서를 지켜 타인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배려의 축적입니다 . ... 하지만 묵묵히 규칙을 지키는 것은 식사라는
즐거움과는 충돌되는 면이 있습니다. 즐거움은 자유나 편안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 자유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그것은 본질을
파악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본질을 파악하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자신의 머리로 판단할 수 없다면 자유 따위가 성립할 리
없습니다."
또 배웠다. [나 홀로 미식 수업]을 하는 고수에게
감히 덤비던 아줌마는 내가 누리지 못하니 얄미워서 무시하려던 옹졸한 마음을 접고 말았다. 모두가 추구하는 미의 세계가 있다. 감히 누가 그
아름다움에 돌을 던지랴. 하물며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미각을 위해 던지는 이에게는 오죽하랴. 설탕을 팍팍 쓰는
대세 집밥선생도 고개를 숙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