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을 항상 친구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늘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는데 그게 대부분 한국소설류였어요.
남편은 "그런 돈도 안되는 책 읽지말고 뭘 배우는 책이나 시험이라도
칠 수 있는 책을 읽지?"라고 비아냥 거렸지만 소설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렇게 폄하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는건 저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막상 소설을 읽거나 혹은 읽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나도 저렇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거나 감동적이었던 소설속의 삶에
동화되어 잠시동안 정신을 못차리는 정도의 먹먹함을 느끼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책의 제목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대학교수나 작가 예술인들은 어떻게 대답할지
정말 궁금해지더라구요.
소설에서 무엇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이 책의 중심은 달라집니다.
1.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하다
2.소설에서 나를 발견하다
3.이 소설을 말한다
4.나는 이렇게 읽었다
5.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저는 이 중에서 소설에서 1.나를 발견하다에 가장 공감하며 읽었답니다.
그 다음이 5.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다였구요.
스타카토로 톡톡 부러지던 간결한 문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구성,
금방
이라도 종잇장을 북북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
속수
무책으로 오감에 소름을 돋게 하는 감각적인 언어들.....
실로 그건 내게 미지의 세계였고,경이로운 신천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소설을
쓸 줄 아는 그가 한없이 위대해 보였고, 부러웠다. 나는 마치 어느 숲에 놓인
덫에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짐승 같았다. 그래도 행복했다.
송준호 박범신의 [덫]편
작가는 먹고 대학생이던 시절 뜬금없이 만난 소설가 박범신의 두 번째 단편집
[덫]을 읽고 꼬박 일주일동안 덫에 실린 단편소설을 모조리 베껴 쓰면서 작가를
닮고 싶어 몸부림칩니다.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미친듯이
몰두하며 조각칼로 새기듯 정성을 들여 써본적은 없는 터라 역시 마음속으로만
잘쓰고 싶은 사람과 실제로 모든것을 바치는 사람의 현실은 달라지는구나 씁쓸한
느낌이 들더군요.
세상의 풍경은 늘 그
사람의 상처를 투과하여 보이게 마련이란 것을, 난 이때
얼마간 깨달았던 것 같다. 또 나는 그동안 '책'을 넘겼지 '문학'을 접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나를 달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외로움을
안아달
라는 몸짓으로 나는 책을 읽었던 거구나. -김병용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편
작가는 자신의 나이나 처지에 맞춰 관심 대목만 중점적으로 읽는'덜 읽기' 전형으로
책을 읽다가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며 다시 '더 읽기' 방법으로 설국을 읽자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선 설국이 나타났다고 고백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작품은 하나지만 그걸 읽고 받아들이는 독자에 의해 수백가지의 느낌과 반향이
있을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는 저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면 달라지는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것이 소설 읽는 법에도
적용이 되네요.
소설가나 대학교수들도 책을 읽고 자신이 평소에 실천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데
용기를 얻기도 하고,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변천사를 이해하는 자료로 쓰기도 하면서 소설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제게도 소설은 그랬습니다. 마치 어린시절 우리 동네인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공간을 만나서 슬며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알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게 되어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에 가슴 졸이기도 하고,
분연히 일어나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는 다른 운동과 달리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가들의 글솜씨에 감탄과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기고 했던
시간이었답니다.
소설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만나든 내 인생의 한 시기를 풍요롭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내 삶의 친구가 될 그 이야기들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아끼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들에게 늘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싶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