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지 않는다 - 도쿄대 병원 응급실 책임교수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원리
야하기 나오키 지음, 유가영 옮김 / 천문장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죽음은 결코 나쁘지 않다 … 죽음 저편의 이야기

[리뷰] 『사람은 죽지 않는다』(야하기 나오키, 유가영 옮김, 천문장, 2017)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물음은 단 하나 “사람은 죽으면 끝인가?”이다. 이 화두를 어떻게든 풀어보기 위해 여러 공부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죽음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도쿄대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야하기 나오키 교수는 내 아버지와 동갑이다. 70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저자가 온 평생 짊어온 질문은 내가 계속 관심을 갖는 ‘죽음’이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응급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생사를 오간다. 직업 자체가 ‘죽음’을 막아보는 일이고, 죽는 자들을 보는 일이고, 죽음을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을 달래는 일이다. 현대 서양의학의 최첨단 지식을 갖고, 그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목격한 저자가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온전히 녹아 있다.

 

나오키 교수는 어릴 적부터 “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는 왜 존재하고, 우주는 누가 만든 것일까라는 생각도 자주했다.”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일찍 죽을지 모른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듣는다. 자전거 타다가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다. 또한 젊은 시절엔 등산을 너무 좋아해 추락 사고를 두 번이나 당하고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다. 그럼에도 계속 등산을 하고자 했지만, 어딘가에서 등산을 그만하라는 목소리를 듣고 산을 멀리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생명과 수명에 대해 운명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저자가 등산을 좋아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장거리 달리기와 등산을 비유한다. 그 모든 포유류 중에 인간이 가진 독특한 능력이 있는데, 바로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다. 장거리 달리기 능력 덕분에 원시인은 험한 적자생존의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나오키 교수는 적었다. 이 장거리 달리기 능력은 등산으로 연결된다. 그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무심해질 수 있는 것이 등산의 큰 매력이다. 드넓은 대자연에 홀로 살아있는 듯한 착각은 가히 황홀하기까지 했다.”라고 밝혔다.

 

유명한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대부터 등산을 좋아했던 저자는 메스너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등정에 올라 경험한 사례들을 세심하게 읽어냈다. 과학적인 사실 하나는, 험준한 산악 등정을 한 대원들은 하산 후 극심한 이상 증상을 겪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극단적인 과호흡으로 동맥혈 탄산가스 농도 저하가 발생하고, 뇌혈관이 위축되어 혈류부족을 일으킨 탓이라는 실험결과를 소개했다.

 



과학적 지식과 저자의 경험이 말하는 진실

 

응급실 의사로서 저자는 언제나 환자를 목도하며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매일 죽어가는 혹은 극적으로 살아나는 환자들을 보면 의사들이 생과 사를 객관화해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나오키 교수는 심지어 죽음을 의료행위의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인명은 재천이기 때문이다. 한편, 의료 현장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나오키 교수는 환자들 중 유체이탈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심지어 본인도 영매를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이러한 믿지 못할 경험들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저자는 202쪽에서 “영적 현상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을 체험하거나 보고 들음을 통해 받는 계시, 혹은 도출된 이념이나 진리야말로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맞는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단 그 현상이 주는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대과학은 생명과 삶에 대한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을 유지하지 못 한다. 그래서 주로 미시적인 연구방법인 DNA 조사, 초음파, 내시경, CT, MRI 등을 활용한다. 생체는 ‘종합적인 유기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마치 과학으로 모든 것을 해명하고 밝혀내고 살려낼 수 있다고 간주한다. 죽음 역시 현대의학이 절대로 극복하지 못할 주제이고 인간이 그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죽는다는 것, 늙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대에서 죽음의 의미는 변질된다. 보험처리 때문에 죽은 자를 계속 해서 진료하는 의사가 있다. 이 때문에 사망시간이 바뀐다. 또한 뇌사가 죽음인지, 심정지가 죽음인지 죽음에 대한 정의가 묘연하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매우 특별하고 한정된 사건이 되어 버렸다. 원래 죽음은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었다. 죽음이란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건이었다. 나오키 교수는 179쪽에서 “두려운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도 노화는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분명 존재한다. 저자는 분명히 강조한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죽음일 뿐 그 너머엔 무언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사람은 죽지 않는다’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은 죽지 않고 “move on”한다고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넘어가는 것이고,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지 않고 영혼은 계속되는 것이다.

 

저자가 죽음에 대해 조금은 관대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섭리나 보편의식의 존재를 이해함으로써 갖게 되는 최대의 효과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가 눈앞에 닥쳤을 때 그 진의를 생각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들에 너무 좌절하지 말자. 조금만 기다리면 해답이 찾아온다. 중국 속담처럼 방법은 고난보다 많다. 나오키 교수는 죽음은 오히려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저쪽 건너편으로 너무 쉽게 건너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 같은 셈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양심을 갖고, 이타적인 행위를 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사람은 죽지 않고 영혼은 섭리에 따라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세의 죄가 무서운 이유일 수 있다. 의사이자 과학자인 저자가 이야기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잘 읽히면서도 진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춘기 시절 품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 조금이라도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꼭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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