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율, 강의와 강연 하이데거 전집 10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김재철 옮김 / 파라아카데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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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이 존재하는 최상의 근거명제 ‘근거율’

[서평] 『근거율, 강의와 강연』(마르틴 하이데거(철학자), 김재철 역, 파라아카데미, 2020.02.25.)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로 유명한 하이데거. 그는 존재론과 현상학에 큰 족적을 남긴 대철학자이다. 이 책 『근거율, 강의와 강연』은 하이데거가 강의한 원고와 추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형이상학적 사유 체계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총 열 세 번의 시간(강의)을 담고 있다. 


인간의 사유, 즉 지성은 언제나 집요하게 근거를 요구한다고 하이데거는 적었다. 가까이 있는 근거, 계속 남아 있는 근거, 최종적인 근거를 얻으려 노력하는 게 인간의 사유다. 근거율은 한 문장으로 “이유 없이는 아무것도 있지 않다.”이다. 근거율이 인간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묻혀 있었던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고, 가까운 것에 무감한 우리의 태도 때문이다. 


“가까운 것으로 나아가는 길은 우리 인간에게 항상 가장 먼 것이며, 결국 가장 어려운 것이다.”-17쪽.


근거율은 지금껏 존재자가 관찰될 수 있었던 한에서 각각의 존재자는 근거를 가진다. 특히 근거율은 근거율이 정립하는 것을 이중 부정(∼없이는 아무것도 있지 않다.)을 통해 필연적인 것으로 정립한다. 철학에서 동일률, 차이율, 모순율, 배중률 등 모든 원칙은 근거율에 근거하고 있기에, 근거율은 최상의 근거명제이다.  




최상의 근거명제로서 근거율, 존재자를 밝히다


하이데거는 근거율을 알면 우리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된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언제나 근거율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율이 드러나는 지점을 관찰하고 파악하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그가 적은 바, “근거탐구와 근거정립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규정한다”(32쪽)은 이해가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근거율은 ‘이유 없이는 아무것도 있지 않다. 근거 없이는 아무것도 있지 않다.’이다. 


더 나아가 근거율은 그 자체로 최고의 명제이기 때문에 또 다른 근거 없이 존재한다. 즉, 근거율은 근거 없이 있다. 그런데 언제나 최고의, 숭고한 원리는 그 자신 안에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역설을 마주하는 자세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최고의 역설을 자신의 과제 안에 내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근거율은 근거의 명제이다. 그런데 근거의 명제는 명제의 근거가 된다. 명제의 근거로서 근거의 명제인 것이다. 바로 앞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모순과 대립은 현실성에 속하는 내적 생명이다. 이 지점은 헤겔이 『논리학의 학』에서 언급했다. 그러니 가족 안에 혹은 내 안에 모순성이 있다고 해서 자책할 일은 아니다. 


“근거율의 난해함은 논구해야 할 명제가 명제로서 있는 바 그대로 원리의 서열과 역할을 가진다는 것에 있다.”-41쪽.


표상은 되돌려 보낸다, 즉 송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표상작용은 언제 어디서나 근거로 도피할 수밖에 없다고 하이데거는 강조한다. 근거율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즉 표상할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이 근거율을 사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근거율은 인간에게 지각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근거는 표상하고 사유하는 인간에게 송달되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사유자의 사유에서 위대하게 남아 있는 것은 항상 이미 울려오고 있는 것, 고유하게 낱말로 표현되는 것 안에서만 성립한다.”-66쪽. 


라이프니츠는 존재하는 것들의 근거는 자연 안에 있다고 했다. 그걸 한 마디로 ‘신’이라고 표현했다. 필연적으로, 최고의 근거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신이다. 이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동의 원동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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