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나에게 -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
스티븐 배철러 지음, 이영래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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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곧 열반”…스티븐 배철러의 『고독한 나에게』

[서평] 『고독한 나에게 (불교철학자가 40년 동안 찾은 고독의 조각들)』(스티븐 배철러, 이영래 역, 유노북스, 2020.03.05.)


‘고독이 몸부림칠 때’라는 영화가 있었다. 얼마나 처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저자 스티븐 배철러는 고독이 지옥도 아니고, 더없는 행복 역시 아니라고 머리말에 썼다. 그는 고독의 절충점을 찾고자 한다. 그건 바로 ▶ 자율 ▶ 경탄 ▶ 사색 ▶ 상상 ▶ 영감 ▶ 배려다. 


이 책 『고독한 나에게』를 읽다보니, 내가 마치 어느 오지의 고요한 곳에서 침낭 하나 메고 탐험을 하는 기분이 든다. 또한 이름이 낯익은 ‘스티븐 배철러’를 따라 각종 환각제를 마시고 몽롱한 상태에 이르러 나를 온전히 느끼는 기분이 든다. 책에는 각종 환각제를 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술과 담배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한 단계 고차원으로 이끌어줄 마약 종류의 치료제를 옹호한다. 


『고독한 나에게』에는 붓다와 몽테뉴의 얘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몽테뉴의 『수상록』을 인용하고 발췌한 대목들이 눈에 띈다. 미셜 드 몽테뉴는 13년이나 해오던 고등법원 참사관 자리를 내놓고, 고독한 삶에 빠져들고자 탑에서 저술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가 1570년이다. 몽테뉴는 거의 10년 동안이나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고독한 나에게』 말미에는 고독이 결국은 인류애를 깨닫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몽테뉴나 제인 구달이나 넬슨 만델라 등 모두 고독 속에서 휴머니즘을 찾았다. 




"내가 사랑하고 옹호하는 고독은... 인간애에서가 아니라 인간사에서 멀어지는 일이다."ㅡ42쪽. 


고독이 단순히 물리적 분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독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내면을 키워가는 일이다. 영혼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스티븐 배철러는 종교를 믿든 믿지 않든 고독 안에서 실존적 질문을 마주하고 살핀다고 적었다. 고독은 보살펴 키워야 하는 운명이다.  


몽테뉴는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지나간 일들을 회상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고독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고독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처의 ‘마음챙김’은 수행자가 어떤 것에도 집착 안 하고 독립적으로 머무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슬프다. 몽테뉴는 죽음을 각오하는 게 바로 자유라고 밝혔다. 죽음을 맞이하다 보면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종교는 고독을 먹고 산다. 스티븐 배철러는 “금욕의 어려움은 수익, 힘, 명성을 낳는다.”고 적었다. 


고독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데모크리토스는 진리라는 게 무한히 높은 신성한 깨달음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신성함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없겠지만, 고독함이야말로 신성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고독은 곧 열반이다. 욕망, 두려움, 미움, 견해에 휩쓸리지 않으며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인 것이다.”-214쪽. 


『고독한 나에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수상록』이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1676년부터 1966년까지 290년 간 금서였다는 사실이다. 몽테뉴는 신앙과 이성이 양립할 수 없고, 구원은 신앙만에 의해 얻을 수 있다는 견해에 반대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책이 금서에 지정된 것이다. 몽테뉴는 아무래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났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독립적이 되고, 고독한 인간이 되었다. 나쁘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책의 200쪽, 203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고독한 이들이여, 힘을 내자. 


“명상은 경험의 내용과 당신의 ‘관계’를 변화시킨다.”-200쪽. 


“세상은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여기 있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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