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맹가노니 - 이야기의 탄생
이송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 등에 업은 영화적 허구, 자기성찰을 따라야

[서평] 나랏말싸미 맹가노니 (이야기의 탄생)(이송원, 문예출판사, 2019.08.08.)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탄생할까? 영화 <나랏말싸미>를 흥미롭게 보았다. 한글 창제설 관련 논란만 없었다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젠 고인이 된 전미선 배우의 연기는 출중했고, 세종역의 송강호와 신미스님역의 박해일이야 믿고 보는 배우가 아니던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밥은 빌어먹어도, 진리는 빌어먹을 수 없다.”였다.

 

때마침 영화 <나랏말싸미>의 시나리오 작가가 책을 냈다. 바로 나랏말싸미 맹가노니의 저자 이송원 씨다. 지은이의 약력을 보니, 정말 인생 파란만장하다. 영화를 수입해서 소개하는 일을 하다가 영화판에 뛰어들었고, 어찌어찌 하다보면 기획된 영화가 엎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기어이 살아남아 세종의 한글창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역사 속 실존인물을 다룰 때, 주인공이 만만해 보이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쓸 수 없다.”(28)

 

영화의 시나리오는 과연 어떻게 탄생하는가? 역사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알아야 하는, 알고 싶은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래서 시대극은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이송원 작가 역시 시대극을 많이 써온 듯하다. 그렇다면 좋은 작품은 어떻게 쓰이는가? 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일을 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 행복한 인간은 결핍을 느끼지 않으며 절박한 결핍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역설.”(30)

 

훈민정음이 위대한 창작물이라면 그 뒤에 거대한 결핍이 없을 리 없다. 이것이 드라마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구심을 품고 실록을 들여다봤다.”(30)

 

외국 영화를 많이 보아온 필자로서는 시대극이 요새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남의 역사를 알아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게 영화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골 때린다. 역사를 건드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재미난 영화가 대박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어떻게든 흥미롭게 끄집어내야 한다.

 

터무니없는 날조는 지양하더라도 영화적 허구를 위해 어느 정도의 역사 왜곡은 불가피하다....이마저도 허용할 수 없다면 영화가 아니라 역사서를 봐야 할 것이다.”(42)

 

이송원 작가는 영화 <사도>의 극본을 맡기도 했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감독인 조철현 씨 역시 <사도>의 극본을 함께 썼다. 오랜 선후배 사이인 이 작가와 조 감독은 영화 <나랏말싸미>로 뭉쳤다. 과연 작가로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노이즈 마케팅처럼 보이기도 했던 한글 창제 관련 논란들은 무엇이었을까? 이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산재한 기록들을 꿰뚫고 있는 역사의 맥락, 인물들 마음의 맥락을 드러내자면 영화적 허구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그 허구의 성은 자기가 살아온 삶과 정직한 자기성찰의 기초 위에 쌓아야 한다. 기억의 저편에 가둬두고 싶은 치부조차 끄집어내고 녹여 넣어야 한다.”(44)

 

이송원 작가는 잘 알려진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지금에 맞게 해석하고, 의견을 덧붙이는 게 바로 스토리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영화의 본질이란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까? 관속에 누워 있는 세종의 얼굴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시나리오가 바로 <나랏말싸미>. 세종대왕은 과연 한글 창제를 만족해했을까? 글자를 만들어낸 과정에 정말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 책 나랏말싸미 맹가노니조철현 감독의 이야기나, 공동작가 금정연 씨 후서, 기획자 우석훈 씨의 보론 등이 읽는 맛을 더한다. 영화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참고하길 바란다. 아마, 한국영화의 한 계보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나랏말싸미>주인되어 떠나는 나그네등 주옥같은 대사들이 참 많다. 그 중에 신미스님의 대사로 이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복숭에 속에 씨가 몇 개인지는 누구나 알지만,

그 씨 속에 복숭아가 몇 개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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