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가를 위한 감정 수업 - 분노와 신뢰의 행동경제학
에얄 빈테르 지음, 김진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공산당원이 나치 집회에 열렬히 참여한 감정기복

[리뷰] 『협상가를 위한 감정수업』(에얄 빈테르 저, 김진원 역, 세종서적, 2019. 04.25)

 

감정과 이성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와 같이 어려운 개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감정을 이성과 별개라고 보는 사람들의 입장일 뿐이다. 『협상가를 위한 감정수업 : 분노와 신뢰의 경제학』에서 저자는 감정이 인지과정 못지않게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를 경제학의 언어로 조명했다. 감정의 개념은 책에서 여러 실례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게임이론과 죄수의 딜레마에서부터 일상에서 흔히 겪는 갈등과 국제적인 모순에까지 감정이 담당하지 않는 부분은 없다.

 

인류의 진보에서 감정은 인간의 이성적 행동과 교류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분노를 보자. 자세히 보면 분노는 이익을 전제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감정 안에 이익이라는 논리가 존재하고 논리 안에도 감정이 존재함이다. 이러한 성격과 같은 감정은 후천적이라기보다, 최근 점점 많은 과학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시피, 성격은 태어나기 전 아홉 달 동안에 이루어진다.



 

감정도 이성적이다


흔히들 이성에서 출발한 행동은 길고 복잡한 인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감정에서 출발한 행동은 대개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이 두 과정은 동시에 일어난다. 실제로 인간의 생존 가능성이 감정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은 진화 과정에서 생겨나 형태를 이루고 발전해왔다. 가령 오늘날 사회 모습을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느낄 수 없는 자는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이용당하곤 한다.

 

의사결정에서 감정은 재빠른 반응을 유발한다. 이는 심사숙고를 하느라 시간을 애태우게 하는 이성보다 수천 배 효율적이다. 예로 누군가는 자신이 ‘이성에만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겠지만 그럴 경우 시간이 엄청 걸리는 통에 경쟁에서 밀리거나, 자연 상태라면 자칫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인간 행동은 너무 복잡 미묘하여 수학 모형을 사용해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모형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중요한 통찰을 얻으며 신뢰 게임으로 새로이 설계를 하기도 한다. 협상자를 예로 보면, 협상 과정에서 감정 반응을 적당히 사용하면 유리하다. 그래서 감정을 조정하고 균형 있게 바로잡는 능력은 우선시 돼야 하는 것이다.

 

집단을 이끄는 힘이 되는 감정

 

감정은 학습과 무의식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책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꿀벌실험이 나온다. 연구원들은 노란 꽃에만 즙을 넣고 파란 꽃은 그냥 비워두고 꿀벌들에게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란 꽃에 앉은 꿀벌 수가 점점 줄어들었는데 마침내 꿀벌 전체가 파란 꽃을 피해야 한다고 학습했다. 이때 실험자는 꿀벌이 습득한 규칙을 바꾸었다. 파란 꽃에 즙을 넣고 노란 꽃은 빈 채로 둔 것이다. 꿀벌은 고집스럽게 노란 꽃만 계속 찾아 다녔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실험은 우리 무의식에 내재한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르쳐준다. 다시 말해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은 오로지 논리와 사리사욕만이 존재하는 자리에 감정을 불어 넣을 때라야 가능함을 보인 것이다.

 

이외 각국을 상징하는 여러 심리 실험이 나오는데 국제적인 분쟁과 문화로까지 해석을 확대하는 저자의 능력은 대단했다. 책에서 주장되는 어휘 중 하나로 ‘집단’이 나온다.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고 채 몇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던 당원이 대규모 나치 집회에 대거 참여하여 열의를 활활 불태운 적이 있다. 거의 최면 수준이었다. 이러한 행동을 저자는 특정 집단에 속해야만 했던 필요성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한 집단에 소속되면 개인은 위험이나 적으로부터 위협이 닥칠 때 훨씬 안전하다. 더불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자원도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집단 소속 욕구는 엄청 강해서 맥락이 닿지 않는 추상적인 상황에서도 존재한다. 이러한 집단 감정을 위해서는 대립 집단이란 존재가 필요하다. 집단 감정 안에는 분노와 공감과 집단 찬양이 들어 있기에 집단 모욕은 개인 모욕보다 더 큰 굴욕을 안긴다. 이것은 문화와 나라 간 분쟁으로까지 해석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장이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개체의 변이와 선택은 집단 차원에서 일어나지 개체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나라마다 사회가 지닌 사고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였다. 어떤 사회에서 오만을 규범으로 삼으면 겸손은 단점으로 여기지만, 겸손이 우세한 사회라면 오만은 지각없이 과대한 자아를 드러내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수가 정의’라고 가정하는 태도는 단순한 만큼 현실 곳곳에서 우리에게 편리한 명분을 제공한다. 복잡한 확률 계산을 해야 하는 상황 등 합당한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때가 그렇다. 우리는 선조들이 이룩한 감정의 엉겅퀴 속에서 우리의 선택을 결정한다. 그만큼 감정은 우리를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선택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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