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즈의 닥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환상 속에서나 만나 볼 수 있을 거 같은 기괴한 모습과 행동으로 이야기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닥터 팽.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기도 하다가 끔찍스러울 만큼 교태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마냥 냉정하고 절제된 사람으로 나타나는 닥터 팽.
그에게 상담을 받는 김종수는 고등학교 세계사 선생님이다.
닥터 팽과 그의 상담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 중간에 크고 작은 일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일어난다.
그것이 환상인지 실재인지 모를 만큼 기묘하게 뒤섞여 전개되기에 독자들은 더 몰입할 수밖에 없다.

김종수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관계.
제자이자 피해자인 정수연, 약을 공급해 주는 용식이, 때론 폭력적이고 억센 모습으로 때로는 나약한 약물중독자로 등장하는 아버지,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약을 팔며 강자로 군림하다 결국엔 비참한 말로에 이른 이웃집 아저씨, 그의 거짓된 기억 속에 등장하는 누나, 그리고 그의 진실과 망상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며 상담을 이끌어 가는 닥터 팽.

초반은 김종수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얘기하면서 진행이 된다.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아버지, 어머니, 누나에 대해 얘기할 때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얘기에 독자는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지독한 환각증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어긋나는 가족사에 대해 비아냥거리듯 대꾸하는 닥터 팽의 모습에서 그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상담 과정에서 서서히 들어나는 김종수의 실체. 
자신의 기억을 위조해가며 끔찍한 과거사를 애써 지우려 했던 그의 모습을 보며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무섭게 여겨지기도 했다.
환각에 의해 나타나는 장면들은 김종수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는데 가끔 제니퍼 로페즈의 영화 'The cell'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물론 'The cell'은 꿈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더 자극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김종수의 환각은 그정도는 아니지만 망상이란 이름으로 덮어버리고 싶은 김종수의 실제 삶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실재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것을 지워버리려 하니 그에겐 오직 망상만이 존재할 뿐인 것이다.
작가도 '올드보이'란 영화를 보고 꼭 이런 작품을 써보고 싶었다니 대충 짐작이 가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진실을 파헤쳐 일침을 가하는 닥터 팽에게 당신은 누구냐 외치는 김종수. 닥터 팽조차 그의 허상 속에 자리한 인물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독자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결국 과거에 촘촘히 박혀 있던 여러 요소들 중에 몇 가지만 추려내어 교묘하게 짜맞춘 그의 기억위조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달리 표현한다면 작가의 구성력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으리라.

다리가 부러져 처참하게 죽어가던 고양이를 기억하며 자기 때문에 죽었을 거라 생각하는 김종수. 그의 모습에서 소설 마지막에 닥터 팽을 향해 던진 말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란 생각이 든다. 그 고양이가 누구에 대한 환상이었는지를 잘 알기에....

그래요, 닥터. 나는 도망칠 거예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니 그건 너무 끔찍한 형벌이잖아요. 나한테는 이 정도가 어울려요. 죄책감도 책임감도 자부심도 없는 이 정도가.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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