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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음 - 귀찮의 퇴사일기
귀찮 지음 / 엘리 / 2019년 1월
평점 :
직장 갖기 참 힘든 세상이다. 그러니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현실적으로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다니던 직장을 3년만에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물론 그 결정에는 가족의 지지와 누군가의 따뜻한 격려가 있어 가능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고 할 때, '어쩌려고 그러냐. 잘 생각해 봐라. 아깝지 않냐. 조금만 더 참아라' 등의 말을 듣게 되는 게 보통 있는 일이다. 그런데 퇴사를 고민하는 저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귀찮님은 할 수 있어요." 어찌보면 그리 거창한 말이나 구구절절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한 마디 말에 큰 위안을 받아 과감히 퇴사를 하게 된다. 퇴사 후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불안감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았지만, 같이 근무하던 직장 동료로부터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다시 힘을 낸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조급해 하지 말아요. 시간이 걸려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고민해봐요." 동료의 조언을 들으며 작가는 불안이란 것은 자신을 깨어있게 하는 고마운 감정이란 걸 알게 된다.
요즘 텔레비젼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자주 언급되는 말이 '타이밍'이다. 적절한 시기에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내 삶에 어떤 변화와 영향을 주는 지 깨닫게 되는 순간 '타이밍'은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 되고 뛰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얻게 된 직장을 뒤로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나설 용기는 쉽게 생길 수 없다. 작가는 글과 그림에 재능이 있어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했고, 고향에 내려와 작업실을 만들고 일하게 된다. 고향에 작업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조언과 그 동역자로 미술적 재능이 뛰어난 동생의 합류는 작가에게 큰 도움과 힘이 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가족의 응원은 천군만마에 비길 수가 없다. 각박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시골의 한적한 곳에서 자신의 작업실을 만드는 과정은 설렘과 기대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고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들은 새로운 시작 앞에 의기소침해 있는 작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삶의 시선을 더 넓혀주는 계기도 된 거 같다. 게으른 삶이 지속될 때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할 때도 있었던 작가의 삶은 결코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좋아하는 일에 발휘하며 기쁨을 얻고 있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작가의 귀엽고 단순한 그림들이 많이 들어가 있어 읽기도 쉽고 보기도 좋고 재미도 있다. 그렇다면 꿈을 향한 작가의 과감한 도전은 성공적이었을까? 작가는 아직 어떤 결론도 낼 수 없다 했다. 서울 쥐와 시골 쥐의 삶을 오가며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 삶이 힘들고 무모해 보여도 정성을 다해 완성해 가는 작가의 여정이 독자로서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번 생은 망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