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른으로 살아갈 용기 : 아들러가 남김 유일한 어른 지침
윌라드 비처, 마거리트 비처 지음, 박예진 엮음, 김효정 옮김 / 이지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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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에로스 vs. 아가페 Beecher 부부는 "Beyond Success and Failure"에서, 가족 간이든 친구 간이든 personal하고 감정적인 사랑은 불건강하고 미성숙한 '에로스'로, impersonal한 사랑은 '아가페'로 분류했는데, 공사구분 희박하고 소집단 내 친목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 감정노동이 과도해지는 한국 같은 유교 사회에 특히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된다. 1. 공사의 구분 부모가 죄를 지었을 때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부모를 숨겨 주어야 한다는 게 공자의 견해이고, 부모를 등에 업고 함께 도망가야 한다는 게 맹자의 견해이며, 한비자는 내 부모라도 고발해야 한다고 했다. 부와 권력을 이용 온갖 불법 행위로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을 무려 법무장관에 임명하고도 대통령은 "마음의 빚"을 말하고, 여성단체 대표든 젠더특보든 피해자의 인권보다는 자신과 친분있는 가해자의 명예를 더 중시하며, 대학원생은 지도교수 댁 김장 때는 그 집에 가서 김치도 담가야 하고, 직장상사일 뿐 내 아버지도 시아버지도 아닌 사람이 나의 '며느리 자질'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등, 한국 문화에서 허구헌날 마주쳐야 하는 이런 일들. 공과 사를 구분 못 하고 모든 인간관계에 君師父一體 관념을 적용하여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까지 '가족처럼' 대할 것을 강요하는 유교의 부작용은 아닌지. 권력층과 통치자에게는 더없이 편리한 통치수단이 되는 유교보다 묵가나 법가 사상이 중국 문화권을 지배했다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2. 아들러와 부처님에 의하면, 내 감정 (종류 무관)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자기중심적' 묵자는 나의 부모와 남의 부모를 섬김에 다름이 없어야 한다고 했으나, 제 부모조차 못 알아보는 것은 짐승과 다름이 없다고 맹자는 비난했다. 제사에 사용되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제나라 선왕은 소대신 양을 죽이라고 했는데, 타인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 하는 이 마음을 맹자는 仁이라고 했다. 희생되는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분/감정이 중요한 것 아닌지. 즉, 양이 끌려가거나 죽임 당하는 장면을 내가 안 보면 그만이기에, 그래서 소 대신 양을 죽이라고 한 게 아닌지. 암튼 이 사례들에서 공맹이 말한 仁은, 아가페보다는 사적이고 감정적인 에로스에 가까워 보인다. 불교의 자비는 어떨까. 본인의 부모, 아내, 갓태어난 아들 모두 등지고 출가한 부처님의 행동에서, 유교의 인과 같은 사적이고 감상적인 측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효도 역시 에로스 아닌 아가페이고 (AN 2:32), 또 강도가 내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내고 있는 와중에도 상대에 대해 慈 (mettā, goodwill)를 유지해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아기가 죽어 슬퍼하는 여인 Kisa Gotami를 위로하는 대신 "마을에 내려가 일가친척 누구 하나 죽은 적 없는 집을 찾아 내어 겨자씨를 빌려 오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는데, 생로병사의 고통이 싫다면 수행하여 윤회로부터 해방되라는 가르침. 마치 환자를 대하는 의사와도 같은 이런 태도가 바로 불교의 悲 (karuṇā, compassion). 그러니 초기불교의 자비도 에로스 아닌 아가페인 것. 불교의 관점에선 특히, 온갖 기대와 감정이 얽히고 섥히는 애정, 애증, 피해의식, 恨 등이 모두 집착이요 惡業일 뿐이다. (세속의 인간관계는 이런 집착이 다소라도 반드시 따르기에, 그래서 법구경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하는 것이고, 부처님도 상식적 의미에서의 '사랑'에 대해 부정적이셨음.) 그러나 이런 에로스가 '진정한 인간미'라도 되는 양 한국의 연속극이나 영화 등에선 그려지고, '자신의 감정에 책임진다'는 개념 자체가 사실 한국 문화엔 희박하다. 에로스에 덜 집착하는 사람 (초기불교와 Beecher 부부에 따르자면 덜 이기적인 사람)이 에로스에 더 집착하는 사람 (초기불교와 Beecher 부부에 따르자면 conceit/ego가 사실은 더 강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도록 요구하는 억압적인 사회. 그러니 체육계든 연예계든 한 두 살 어린 후배면 선배에게 국도 떠다 바치고 새우껍질도 까 드리고 하면서 글자 그대로 '수발'을 들어야 하고 (https://instiz.net/pt/6887716) 운동 코치나 영화 감독이 선수들과 배우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관행'으로 통용되는 기괴한 현실이 된 것 아니겠는지. 개인적 친분/친목이 공익보다 우선되고 특히 '윗사람'의 기분은 법률보다도 더 중요한 문화에서, 상호 존중하고 각자의 기분은 각자 스스로 책임지는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지. 3.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아이'의 베이비시터가 되는 것은 각자의 책임 내가 A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나를 A의 채권자로 만들지는 않는다. 또 소집단 안의 가까운 관계들에서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될수록 소집단 밖의 사람들을 존중, 배려, 연대할 여력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므로 Beecher 부부의 에로스-아가페 구분이나 초기불교의 'not self,' 'no conceit' 가르침 ('자기 자신 포함 세상 만사를 나의 생각/감정 아닌 오직 인과의 관점에서만 impersonal 하게 바라보라'는 것으로 나는 이해)은 개인의 심리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 차원에서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남들이 나의 모든 정서적 필요와 소망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고 무의식에서나마 믿는 건, 어른 아닌 아이의 심리일 뿐. 자신 안의 '아이'는 스스로 돌보는 '어른'으로 만나야,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도 가능하다.

[원문]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99997910372289 'You Are Your Own Child, To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840366193002132/ '불교에 대한 오해 #5. 무조건 남을 내 위에/앞에 두는 것이 무아/겸손'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82543652117715 '불교에 대한 오해 #3. 나와 남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남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무아'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269400873431993 '무아와 윤회'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15007984869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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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른으로 살아갈 용기 : 아들러가 남김 유일한 어른 지침
윌라드 비처, 마거리트 비처 지음, 박예진 엮음, 김효정 옮김 / 이지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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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에로스-아가페 구분이 부처님의 pema-mettā 구분과 상당히 흡사하다고 내게는 보이는데,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에로스를 pema로, 아가페를 mettā로 이해해도 거의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유교 문화권의 모든 구성원들이 특히 한 번쯤 읽어 보아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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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대문 2 : 노장과 병법 편 - 잃어버린 참나를 찾는 동양철학의 본모습 고전의 대궐 짓기 프로젝트 2
박재희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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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교수와 최진석 교수의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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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사회학 입문 - 이론과 현실을 아우르는 생동감 넘치는 사회학을 만나다
김윤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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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그냥저냥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박사를 하신 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만큼 글을 너무 못 쓰시네요. 논리전개도 산만하고, 사회학 `입문`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학 용어를 정의도 안 하고 그냥 쓰십니다. 어떤 용어가 처음에 나올 때는 일단 정의를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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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 - 우리가 균열을 내면 빛은 들어오고, 벽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응준의 문장전선 1
이응준 지음 / 반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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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를 볼 때처럼 으시시해지는.. 독일의 통일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우리 사회 현재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틈을 조금 더 깊이 파준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통찰을 덤으로 얹어 받았다는 점은, 사회학자나 언론인이 아닌 문학가가 쓴 통일논의라는 사실이 주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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