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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생삼세 십리도화 ㅣ 삼생삼세
당칠공자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나는 상신이다.
14만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백씨 집안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갖은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유독 사랑은 내게 가혹했다.
처음 마음을 줬던 이는 내 곁에 뒀던 아이에 빠져 나를 버렸고,
나와 정혼을 했던 이는 내 시비와 사랑을 약속해 나를 떠났다.
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이는 복숭아꽃향 자욱한 그 집에서 내 눈을 도려내고,
내가 그를 버리도록 만들었다.
그 겁운들로 거듭난 나는 비로소 수행을 닦아 상신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고작 5만살의 애송이 황태자가 내게로 다가와 연모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것도 제 아들의 손을 잡고 나타나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왜일까.
천천...이라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은...
나는 구중천을 다스리는 천족의 황태자다.
내가 태어났을 때 삼십육천이 금빛을 발했고,
일흔두 마리 오색조가 날아와 여든하루 동안 춤을 췄다.
태어난 이래 한순간도 황태자가 아닌 적 없었다.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며, 늘 칼처럼 벼려진 삶을 살았다.
어느날 전투 끝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던 중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늘상 찾던 무언가가 마침내 채워진 기분이었다.
그녀가 내 마음을 몰라도 괜찮았다. 곁에 둘 수만 있다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 눈앞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며, 그렇게 내 세상도 무너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멈췄던 인연의 바퀴가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뒤죽박죽 된 머릿속이 비로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돌고 돌아 이제서야 맞잡은 이 손을 이번에는 지킬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이 복숭아향 자욱한 땅에서...
삼생삼세(三生三世)
십리도화(十里桃花)
......
세 번의 삶 동안,
복숭아꽃이 십리 가득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지만 가슴에는 한 송이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원하는 거요?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당신 하나뿐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