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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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도서 교사 서평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첫 책이 이금이 작가님의 '페르마타, 이탈리아'이다.

'페르마타'는 '정류장', '잠시 멈춤'이란 뜻이기도 하지만 악보의 늘임표를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페르마타라는 단어에 여행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잠시 멈추어 평소엔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것들을 여유 있게 생각하는 것. 실은 평소 일상에서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들이다.

143쪽

58세에 친구와 단 둘이 떠난 여행기를 담은 이 책은 위의 내용처럼 나를 잠시 멈추게 해주는 책이었다. 최근까지 바쁘게 달려온 나에게,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은 잠시 멈추고, 평소에 바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여유있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나 역시 단 둘이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내와 10년 전 신혼여행으로 말이다. 작가님이 한달 동안 다닌 곳들 중 네 개의 도시를 아내와 나는 일주일동안 다녔다.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피렌체로, 로마까지.. 5박 7일의 일정으로 언제 또 이렇게 여행을 가겠냐며 욕심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아내와 나 둘다 걷기를 좋아하고, 가보고 싶었던 나라여서 꾹 참고 다녔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는 10년 후에 다시 오자고, 그 때는 좀 여유있게 오자고 약속을 했는데, 아쉽게도 아직 여행은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은 10년 전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어 좋았다. 그 때의 기억과 책의 내용을 함께 정리해본다.

이 책은 여행 장소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지 않다. 주로 그 곳에서 작가님이 느끼고, 생각한 것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장소에 대한 정보들은 요즘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이 더 좋았다.

여행 중에도 숱하게 계획이 어긋나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 테지.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두렵지만 그 덕분에 겁 없이 내디딜 수도 있는 것이리라.

20쪽

10년 전 이탈리아 여행 때, 계획이 정말 많이 어긋났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MBTI의 J가 상당히 강한 사람이었다. 낯선 나라에 가서, 그것도 아내와 함께 가서 정확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맞춰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위의 글처럼 계획은 숱하게 어긋났고, 돌방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만큼 겁없이 사람들에게 되지도 않는 영어로 말을 하고, 물어보고 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어서 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골목과 건물들이 이마와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들이 저렇게 붙어 있는 건 땅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공포 때문은 아니었을까.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옆 사람과 맞닿은 어깨에서, 그와 함께 나누는 온기에서 나오는 거니까. 진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나온 내 삶이 그랬던 것처럼.(두려움을 이기는 법_베네치아)

35-36쪽

베네치아에서 좁디좁은 골목을 아내와 다녔던 기억이 난다.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나는 결코 작가님과 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베네치아의 모습이 떠올라서 위의 구절이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또 요즘 생각하는 것들도 그런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요즘들어 부쩍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어느 것도 혼자서 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간의 온기, 사람들의 도움... 이런 것들이 없다면 정말 혼자서 지낸다는 것은 두려움이 큰 일이라는 것을 요즘 깨닫는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청년처럼 현재를 누리며 살라고 해줘야지.

99쪽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너무나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행복을 너무나 미뤄둔다는 것은 어쩌면 미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가르쳐줬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고통을 훗날의 즐거움을 위해 참아내기도 했다. 지나고보니 그 때 고통을 조금 덜 참았어도 현재의 즐거움의 크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무조건 참으라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 않은 길'을 품은 채 살아간다.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다.

132쪽

이 구절을 읽고, 고민에 빠졌다. 내가 품고 있는 '가지 않은 길'은 무엇이지??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너무 내가 가고 있는 이 길만 생각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않은 길 대신 가고 싶은 길을 앞으로는 좀 생각해봐야겠다.

가끔은 여행을 즐기는 게 아니라 미션을 수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은 여정 자체가 목적이다.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가 여행의 일부다.

157쪽

내 여행도 늘 그랬던 것 같다. 특히나 10년 전 신혼여행으로 갔던 이탈리아는 더욱 미션 수행의 느낌이 강했다. 이 도시 찍고, 이 도시에서 유명한 곳 찍고, 다른 도시로... 그렇게 미션을 수행하듯 여행을 했더니, 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은 남았지만, 어떤 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내와 아쉬움에 다시 가자고 한 것도 여행 자체를 즐기지 못해서 아닌가 싶다. 작가님도 '스펠로'라는 도시? 동네?에서 미션 수행이 아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셨다. 나도 다음에 여행에서는 좀 더 여정 자체에 즐거움을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글이 나온다.

글쓰기가 여행과 다른 점은 퇴고를 통해 잘못됐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 속에 있는 여행은 수정할 수 없다. 그래서 한 번 살면 그뿐인 인생과 닮은 부분이 있다.

187쪽

여행은 인생과 닮았다. 그런 이야기를 이 책의 곳곳에서 많이 하신다. 아직 인생이 무엇인지 막 깨닫고, 그럴 만큼은 아직 살아보지 않았지만, 뭔가 마음에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난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데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한다. 아직 아이들도 어리다보니 한계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여행은 항상 무언가를 남겨준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책과 비슷하다. 책도 항상 무언가를 남겨준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책은 지난 나의 이탈리아 여행 기억을 떠올려주기도 했고, 인생과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끔 해주었다. 그런 면에서 참 따뜻함을 느꼈던 책이었다. 학생들과 어떻게 수업에서 활용할까는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겠지만, 기행문에 대해 공부할 때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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