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스물세 살입니다. A로 성적표를 도배하는 우등생은 아닙니다. 그래도 책의 홍수 속에서 반짝이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압니다. 카프카는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리틀 브라더>라는 분홍 도끼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금수저를 꿈꾸듯, 책이라면 무릇 금도끼를 원할진대, 이 책은 금의 전통과 은의 무게를 종횡무진 피해 다니며, 매우 훌륭하게 빛납니다. 다루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버겁기 쉬운 도끼질이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제 친구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남아돌아 페이스북을 하고, 각종 동의하냐는 물음에 거절 한번 한 적 없는 착한 아이들에게 굳이 생일이 아니어도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정확히는 이 책이 주는 자유를, 제가 느낀 신선한 자유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와 이행적 신뢰를 맺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오다 주웠다며 책상 위에 던져주고 싶습니다.


제가 돈만 많았다면, 엑스넷 디스크를 돌리는 마커스처럼 가방 가득 <리틀 브라더>를 넣고 돌아다니면서 전단지 뿌리듯 나눠줬을 겁니다. 학교 담장, 공원 벤치, 지하철 선반 위에 놓고, 이번만큼은 사람들이 점유 이탈물 횡령죄 염려마시고 가져가시길 바랐을 겁니다.


그만큼 책값이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치킨 한 번 덜 먹은 게 아쉽지 않은 책입니다. 이 책은 춤과 같은 자유의 중요성을 아는 책입니다. 엠마 골드만의 말마따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닌 것입니다. 단 두 번의 생일 케이크 촛불을 더 불면, 저도 믿을 수 없는 25살이 됩니다. 눈앞에 케이크가 없는데도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결코 이 사회의 부조리와 이상한 감시가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스물다섯 살 혹은 서른을 맞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상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고 싶습니다. 각자가 춤출 수 있는 작은 스테이지를 되찾는 데 이 책이 하나의 변곡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책을 노량진의 한 카페에서 읽었습니다. 앤더스 부인이 등장할 때, 저는 잠시 책을 덮고 카페에 비치된 흡연구역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카페 바로 옆엔 경찰서가 위치해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경찰서 입구에 설치된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은, 개인정보를 절대로 묻지 않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위해 설치된 그것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묻지 않는 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리듬을 탈 수 있도록, 조용히 음악을 켜는 책, <리틀 브라더>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