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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ㅣ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얼마전 프랑스 영화 ' 고슴도치의 우아함 '를 보는데 독서광인 여주인공이 테이블 위해 읽다 놓아둔 책이 다니카키 준이치로 '음예예찬'이었다. '그늘에 대하여'로 번역되어 나온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어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책을 한 번 보고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잊고 있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들어간 요즘, 오히려 시간은 많음에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성적 기호와 속마음을 적은 남편과 아내의 일기를 번갈아 서술하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서로가 일기를 훔쳐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긴장감을 동반하며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마지막 반전이 밝혀지며 마무리 되는 이 소설을 누군가 육체파 심리 스릴러라 한 표현이 참 적적하게 느껴졌다. 중편소설 분량이라 순식간에 다 읽고 나니 잃어가는 독서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기에 이만한 책 없겠구나 싶었다.
첫연애 후 결혼한지 어느 새 7년 차, 남녀 사이의 사랑과 성관계의 변화에 대해 의문점들이 생기는 시기를 맞이했구나 스스로 생각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성'이란 함께 나눌 대화의 소재로 선택하기에는 본능적인 거리감이 있는 주제다. 그래서인가 다른 사람들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즉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지 아닌지 확신하기 어려운 범주의 문제같다고나 할까. '성'이 '마음'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포르노가 아닌 문학 작품을 통해 건전히 탐구해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서 이 책을 골랐다.
책을 읽고 얼마 후 넷플릭스 10부작 일본 드라마, 같은 제목의 원작소설을 드라마한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드라마를 보았다. 제목만으로도 누군가와 함께 보기엔 조금 민망했기에 혼자 보았는데, 심리묘사 뿐만 아니라 주인공 부부의 사랑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것이 서정적인 일본 드라마풍의 요소를 듬뿍 갇고 있었다. 섹스를 할 수 없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열쇠>를 읽을 때 같이 보면 생각이 더 풍성해질 것 같았다.
육체적 만족만으로 결혼 생활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육체적 관계없이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두 작품을 함께 보며 일본 문화의 성개방성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소재가 아니라 그 문제의 본질에 얼마나 세련되게 다가갈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열쇠>는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보기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그런 이야기를 써 준 타니자키 준이치로라는 사람은 내게 진정 소설가로 인정받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