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비약'을 해야 한다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사랑은 단지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이루고 있던 익숙함을 버리고 상대방을 믿고 나를 변화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이라고 정의했다. 그 비약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비약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대상과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고약한 취두부 향기에 코를 틀어막고 얼굴을 찡그리기만 한다면, 한 장 읽는 데 30분 걸리는 들뢰즈의 책을 사정없이 덮어버린다면, 아이돌 가수이지 뭐 다른 게 있겠어하고 BTS의 음악을 틀어보지도 않는다면 너는 방구석에 앉아 사랑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뿐이 더 되겠니 하고 나에게 뜨끔 하게 말한다. 음식은 먹어봐야 맛을 알고 책은 읽어 봐야 진가를 알며 노래는 들어 봐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더 온전히 집중하여 맛을 느끼고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읽으려 애쓰며 눈을 감고 선율에 몰두하면 더 많이 알게 된다. 더 많이 알게 되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나는 믿음은 그렇게 천천히 싹터서 사랑의 꽃으로 활짝 핀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처럼 만남이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취두부는 상종 못할 남자구나, 다음엔 절대 저런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지 않으리 하고 다시 골방에 처박히기도 한다. 그러나 뼈아픈 인생 경험 하나를 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쁜 남자 많이 만날수록 좋은 남자와 결혼하더란 소리가 영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더 온전히 사랑할수록 나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고 나를 변화시킬 힘을 얻었던 경험을 소개한 책이 있다. 김송연 작가의 첫 에세이 집 'BTS 오디세이'다. 김송연 작가는 브런치 이웃이다. 나는 그녀가 낯선 프랑스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글을 통해 그녀를 만났다. 솔직했기에 너무 아픈 그녀의 상처가 그대로 와 닿았다. 가식 없이 진심 담긴 글은 누구나 울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브런치에는 영화 이야기, 음식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있었다. 가끔 그녀의 서랍을 드나들며 글들을 읽었고 그녀가 소개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던 매거진이 하나 있었다. 사실 내가 글로 만난 그녀의 이미지와 그 매거진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순진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을 통해 작가와 진심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며 글을 읽는 타입이다. 나를 전율하게 했던 그 시인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의 롤모델이던 그녀의 소설들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때도 그 작가가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속으로 두둔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하고 끝내 믿지 않으려다가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글을 읽으며 그 글을 쓴 사람을 상상하다 보면 독자는 스스로 작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원하는대로 작가의 성품이나 취향까지 만들어 보기도 한다. 내가 그려보던 작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BTS, 방탄소년단?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얼마 전 'BTS 오디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그녀의 BTS 글을 처음으로 만났다. BTS에 대한 관심보다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구입한 책이었다. '고통과 치유의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분명 이 책 어딘가에 그녀가 겪던 그 아픔을 치유해 가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기대해서였다.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 글은 희망처럼 붙잡고 있던 아이에게 외면당한 엄마의 심정을 담은 글이었다. 읽는 사람까지도 절망으로 이끌고 가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헤쳐 나왔을까, 그 지혜의 비법을, 그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책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