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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6년만의 장편 소설. 어쩌면 그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품. 추석 연휴를 끼고 나름대로 아껴 읽었지만, 약 76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매끄럽게 술술 넘어가 버렸다.
하루키의 장편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키의 책은 원래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 또한 <상실의 시대>를 제외한 장편소설들을 그렇게 읽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이해하지 못했던 작품도 지금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월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의 독서 이해력도 한 층 더 성숙시켜 주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사랑하는 소재들이 모두 집합했다. 그림자와 실체, 섹스, 다른 차원(혹은 다른 세계)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한 기존의 작품들의 향기도 꽤나 짙게 베여 있었다.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향기가 강하게 풍겼다. 작가 후기를 보니 43년 전 초고의 첫 완성 버전이 그 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작가가 다시금 쓰고 싶었던 새로운 버전의 장편소설이 되겠다.
하루키의 글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섬세한데 가독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그림이 아주 잘 그려진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글이 영상화되어 흘러간다.
또 하나는 하루키가 자주 사용하는 '무언가'라든지 '어떤 것'같은, 적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적확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아주 탁월하다는 점이다. 단어로 확정지을 수 없는 것을 적어내는 능력은 하루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내 서평에는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숙지하길 바란다. 하루키의 책이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서평을 읽고난 후 책을 읽는 것도 좋으나 그다지 추천하진 않는다. 또한 이곳에 적은 서평은 주관적 해석이므로 독자와 다른 서평, 비평가들와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현실의 세계와 높은 벽으로 둘러쌓인 도시. 후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간이다. 주인공의 첫사랑은 그 도시에 실체가 있고, 주인공은 현실에 실체가 있다. 그림자만 남은 첫사랑의 실체를 보기 위해 주인공은 중년의 나이에 그 벽으로 둘러쌓인 도시에 갑작스럽게 떨어진다. 그리고 그곳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소녀 때 모습 그대로의 첫사랑을 만난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도시 밖에 그림자를 떼어 놓는다. 그림자를 잘 돌봐주겠다고 문지기가 얘기했지만 그림자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어 간다.
그림자는 실체를 설득해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실체는 마지막에 가서 자신은 나가지 않겠다고 해버린다. 결국 그림자만 현실로 돌아가게 되고, 그대로 또 다시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온 그림자는 자신이 실체임을 인식한다. 분명 도시에 남기로 했는데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그림자가 실체였고 실체가 그림자였던 것일까.
이 부분이 처음엔 많이 혼란스러웠다. 실체는 나의 어떤 부분이고, 그림자는 나의 어떤 부분인 걸까. 이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는 그것이 좀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림자가 살아가는 현실의 주인공은 '현실을 살아가는 마음의 실체'라고 할까. 도시에 남은 실체는 '자신이 좋아한다고 여겼던 감정의 집합체'라고 해석했다. 도시는 기억장치(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것)며, 오래된 꿈은 과거의 추억이나 기억이다. 그리고 꿈 읽는 이가 된 주인공은 그곳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현재의 자기 자신인 것이고. 그렇게 해석하면 이 작품이 원활하게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주인공과 바톤 터치를 한 소년은 누구일까. 나는 그 소년은 주인공의 젊은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꿈의 형체가 만들어질 시기의 주인공. 과거의 추억과 기억은 과거의 자신에게 맡기고 현실로 돌아감으로써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고 보았다.
소년이 과거의 자신이라는 힌트는, 도시 속 주인공의 꿈에 나타나 그와 자신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에서 한 번, 분업의 과정에서 한 번 더 알 수 있었다.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애초에 둘은 원래 하나였다는 것이고, 분업의 효율에서 오래된 꿈을 여는 것은 그 과거를 겪었던 주인공은 회상하듯 열 수 있지만, 그 당시의 상세한 감정들은 그 과거를 현재로 살아가는 소년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년의 입장에서는 겪지 않은 미래 혹은 아직 추억이나 기억이 될 정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오래된 꿈이라면 당연히 오래된 꿈을 여는(회상하는) 것이 불가능할테니 말이다.
그리고 현실의 그림자는 2부의 끝에서 소녀를 만나고 그녀로부터 정확하게 자신은 그림자였음을 선고받는다.
현실을 충실하게 사는 것, 강렬했던 첫사랑의 기억 속에서 행복해하는 것.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하루키는 3부의 마지막에 주인공의 실체를 도시 밖으로 내보내면서 현실에서 나아가며 살아가야 함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다. 소년을 도시에 남겨둠으로써 그 시절의 강렬했던 어떤 것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자신에게 맡기라고 한 것이다. '그 때 그런 사랑을 했었지'하는 정도로 말이다.
강렬한 사랑, 현실을 살아가는 것, 붙잡힌 감정...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배경, <기사단장 죽이기>의 캐릭터, <상실의 시대>의 청춘의 사랑과 상실감까지. 기존의 작품들을 모두 품은 게 바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