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구판절판


돌연 나는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모드를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99쪽

손 피부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다른 곳 피부와 마찬가지로 지나치다 싶게 부드러워서, 볼 때마다 피부에 멍이나 상처를 낼 만한 날카롭거나 거친 물건이 함께 떠올랐다.-122쪽

이제 모드는 젠틀먼을 지켜보았고, 나는 둘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 셋은 열병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151쪽

모드는 너무나 깔끔하고 여리고 창백해 보였으며,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젠틀먼이 모드를 꿀꺽 삼켜 버리거나 멍들게 만들 것만 같았다. -155쪽

「연인들을 위해 좀 봐줘. 너는 연인이 있던 적 없어?」-168쪽

「모드는 당신 도움을 얻어 브라이어에서 빠져나가길 원할 뿐이에요.」내가 말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지.」 하품을 하며 젠틀먼이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꿈속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엄마 젖 먹을 때부터 다 알고 있다고. 모드 침대에서 아무 소리 못 들었어? 모드가 뒤척이고 한숨을 쉬지 않던? 나 때문에 한숨을 쉬는 거야. 좀 더 열심히 들어야 하겠구먼. 내가 와서 같이 들어 줘야 할 것 같네. 그렇게 해줄까? 오늘 밤 네 방으로 갈까? 네가 나를 모드 방으로 데려가. 모드 심장이 얼마나 심하게 뛰는지 보게 될걸. 내가 볼 수 있도록 네가 모드 드레스를 내려 줘도 되고 말이야.」-173쪽

<그건 흡사 내가 모드를 사랑한다는 말 같잖아.> 나는 생각했다. 그 생각에 나는 바뀌기 시작했다. 초조하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모드가 나를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179쪽

<갖다.>버러의 여자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 남자가 널 가졌어?> 사람들은 그것이 재채기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채기는 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전혀 관계없었다….-187쪽

「악몽은 안 꿨어.」모드가 말했다. 「꿈을 하나 꾸긴 했지만. 하지만 무척 달콤한 꿈이었어. 아마 … 아마, 그 꿈에 네가 나왔던 거 같아, 수….」-189쪽

모드 옆에 누우면 모드를 만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드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으면 키스하고 싶어지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키스를 하면 모드를 구하고 싶어지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에도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더는 밤은 없었다. 시간이, 언제나 그토록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돌연 빠르게 흘러 4월말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무언가 바꾸기에는 너무나 늦었다.-190쪽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세요, 아가씨. 도망치기 딱 좋은 밤이로군요!」-201쪽

모드는 석스비 부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내게 친절했다. 그리고 내가 모드의 인생을 망가뜨리려는 생각뿐이었을 때, 모드는 내가 자신을 사랑하게 했다. -204쪽

「하느님께서 맺으신 석을 사람이 풀지 못할 것입니다.」 목사가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둘은 결혼했다.-205쪽

리버스 씨는 굉장히 빠르게 이야기했고, 이 때문에 나는 끔찍하게 놀랐다. 난 놀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남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게 싫다.-284쪽

리버스 씨는 자기가 내 마음을 얻은 것인지 알 수 있기를 기다리며 날 지켜보고 있다. 리버스 씨는 내 마음을 얻었다. 브라이어에서 내 미래에 대해 한 말 때문은 아니다. 리버스 씨가 한 말 가운데 내가 이미 오래전에 결론 내리지 못한 사실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리버스 씨가 내 마음을 얻은 이유는 어쨌거나 지금 여기에서 내게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계획을 짜고, 40마일을 달려왔기 때문이다 잠자는 집의 심장부에 몰래 들어와, 내 컴컴한 방 속으로, <나>에게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299쪽

여기는 내 침대가 아니고, 잘 시간도 이미 종이 치고 지나갔으며, 즐겨 곁에 두고 자는 것들, 어머니의 초상화, 내 상자, 하녀 어느 것 하나 옆에 없다. 그러나 오늘 밤은 어차피 모든 것이 제 궤도를 벗어났으며 내 일과 역시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자유가 나를 손짓해 부른다.
나는 잠이 들고, 뱃머리 높은 배에 앉아 어둡고 조용한 강을 빠르게 나아가는 꿈을 꾼다.-300쪽

「오늘 밤 할 겁니다.」 리처드가 생각에 잠겨 말한다. 「과연 제가 이 일을 할까요? 할 겁니다. 당신 방으로 왔던 것처럼, 아그네스 방으로 갈 겁니다. 당신이 할 일은, 제가 아그네스와 15분만 같이 있게 해주시는 겁니다.」 리처드가 다시 나를 본다. 「그리고 아그네스가 소리를 지르더라고, 오지 마십시오.」-310쪽

「이제 제게 부드럽게 대하시네요.」 아그네스가 팔을 빼고 소매를 내리며 말한다. 「이젠 또 다른 사람에게 심하게 대하시겠지요. 행운을 빌어 드릴게요. 리버스 씨가 아가씨를 멍들게 하기 전에 아가씨가 리버스 씨를 멍들게 하는 걸 꼭 보고 싶네요.」-312쪽

어쩌면 결국 리처드는 내 연인 일지 모른다. 혹은, 이 아이가 내 연인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연인 보다도 이 아이를 더 원하고 있으니까.-313쪽

나는 줄곧 브라이어에서만 살아왔는데, 이렇게 마르고 이렇게 경박한 여자 아이가 런던에서 살았다니 내게는 일종의 놀라움이자 아픔으로 다가온다.-317쪽

<넌 나를 삼켜 버릴려고 브라이어에 온거야.>-321쪽

수는 내게 낯선 사람이지만 내 모든 시간의 일부이기도 하다.-325쪽

내 하얀 피부는 알아차리면서도 그 아래로 빠르게 흐르는 더럽혀진 피는 눈치 채지 못한다.-328쪽

어느 날 같이 산책을 하는데 수가 내 팔을 잡느다. 수에겐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내겐 따귀를 맞는 듯한 충격이다.-330쪽

심장박동이 수에게서 내게로 전해져 내 심장까지 빨리 뛰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332쪽

나는 점점 수에게, 수의 활기에, 수의 따뜻함에, 수의 특별함에 익숙해진다.-338쪽

내 눈을 마주할 때면, 수의 눈에는 베일이 드리워져 있고 아무 죄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리처드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갑자기 둘 사이에 지식과 이해가 오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수를 바라볼 수가 없다.-344쪽

「아무 일 없었어요.」 내가 말한다.
「아무 일도요?」
「아무 일도요. 우리가 꾸민 일 외에는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시겠군요?」
「물론이에요.」
「그럼 이제 하세요, 아시겠습니까? 연인처럼 행동하십시오. 웃음 짓고, 얼굴 붉히고, 바보처럼 구는 겁니다.」-349쪽

「제가 삼촌처럼 되기 전의 일이에요. 이제 제게 기다림은 거의 괴로움의 이유가 될 수 없어요. 이젠 익숙해졌거든요.」-351쪽

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때는 그게 안전망처럼 여겨졌다. 이제는 덫처럼 느껴진다. 내가 말한다. 「난 있지…. 네가 알려 줬으면 하는 게 있어….」
「뭘 알려줘요, 아가씨?」
말해 줘. 널 구할 방법을 말해줘. 나 자신을 구할 방법을.-369쪽

느낀다. 유리로 만든 모래시계에서 모래알이 떨어지듯 내게로 떨어지고, 쏟아지고, 흘러내리는 것 같다. 그다음 나는 움직인다. 나는 모래처럼 건조하지 않다. 나는 젖어 있다. 나는 물처럼, 잉크처럼 흐르고 있다.-370쪽

나는 수의 손에서 무너지고, 부서지고, 폭발한다. 수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수의 눈물이 내 얼굴 위로 떨어진다. 수는 눈물에 입을 갖다 댄다. <나의 진주.> 수가 입을 대며 말한다. 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다. <나의 진주.> -371쪽

<모든 게.> 내가 혼자 중얼거린다. <변했어.> 예전엔 내가 죽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수가 내 안의 생명을, 내 깊은 곳을 건드렸다. 수는 내게 살을 돌려주고 나를 활짝열었다. <모든 게 변했어.> 아직도 내 안에 수가 느껴진다.-372쪽

「저분이 그리워지실 거예요, 좀 기다려 보시기만 하면요.」-374쪽

수는 갈 것이고, 나는 남을 터이다. 삼촌 곁에, 책 옆에, 스타일스 부인 옆에, 새로운 유순하고 멍들기 쉬운 여자 아이 옆에…. 나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삶을 이루어 온 시간을, 분을, 날을 생각해 본다. 내 앞에 끝없이 펼쳐진, 아직도 살아 나가야 할 시간을, 분을, 날을 생각해 본다. 그 모든 시간이 어떨지를 생각해 본다. 리처드가 없다면, 돈이 없다면, 런던이 없다면, 자유가 없다면, 그리고 수가 없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당신을 알게 된다. 결국은 사랑 때문에, 경멸도, 악의도 아닌, 단지 사랑 때무네 내가 결국은 수를 상처 입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375쪽

「건드려 봐요.」 내가 말한다.「건드려 봐요, 그리고 죽어 버려요. 제 안엔 독이 있어요.」-384쪽

수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나는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수가 내는 소리라면 그 어떤 소리라도 내게 들릴 것이다. 확신한다.-389쪽

<런던.> 나는 생각한다. 이제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단어다.-390쪽

나도 모르게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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