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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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며,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5.18 푸른 눈의 증인』이었다.

아침에 특이한 경험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약 다섯 정류장, 15~20분 가량의 길지 않은 출근길엔 무조건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눈 깜빡하면 지나가던 평소와 달리 지하철에서의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괴롭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가동되는 주파수가 높기 때문에 시간을 느리게 느낀다고 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푸른 눈의 증인으로서 40년만에 1980년 광주의 목소리를 전달해준 폴 코트라이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그 광주에 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퇴근길에는 비가 왔다. 바람이 선선하기도 하였고, 비를 맞은 나무 잎사귀들은 더 푸르름을 뽐냈다. 오늘로부터 딱 40년 전에 이와 같은 온도에, 이와 같은 하늘 아래, 이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이와 같은 바람을 쐬는 그들이 있었다. 광주에.


『5.18 푸른 눈의 증인』은 1980년 광주의 현장을 목격한 외국인의 최초 회고록이다. 몇달 전 알라딘에서 펀딩을 진행하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한스 페터와 인터뷰 했던 이들이 바로 폴코트라이트를 포함한 미국 평화봉사단 소속 단원들이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당시의 노트, 편지, 사진 등 자료들을 꺼내 이 책을 쓰기까지 40년이 걸린 이유를 고백했다. 광주를 기억한다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고 한다.동시에 그에게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있었으며, 이 문제는 회고록 집필 작업을 통해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평화봉사단 임무를 수행하던 40년 전의 그는 광주에서 증인이 되길 부탁받는다. 그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온 세월이 존경스럽다. 이 회고록을 집필함으로 인해 그 마음의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길 바라며 …오히려 그 무게를 함께 짊어져야 마땅한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지 못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 2019년 5월에 5.18 당시의 주요 지역을 방문했다. 광주, 남평, 그리고 호혜원에서 2주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나는 1980년과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의 발언이 시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5.18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가 있음에도 사건의 총체적인 진상은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181p)


할머니는 아주 작은 키에 마르고 허리는 굽어있었다.그러나 할머니의 손아귀 힘이 깜짝 놀랄 정도로 강했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내 눈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미국인인가요?"

"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봤지요?"

순간 나는 마치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충격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네. 너무 안됐습니다"

"그런 위로는 나중에 하고, 지금 당신은 우리를 대변해주어야 해요."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 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 나라 군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요. 미국인인 당신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대신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알려주세요."

할머니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목격한 이 사태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70p



https://blog.naver.com/nabaksa/22196944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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