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연한 고양이 문지 에크리
이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지 에크리'는 지금까지 자신만의 문체로 특유의 스타일을 일궈낸 문학 작가들의 사유를 동시대 독자의 취향에 맞게 구성·기획한 산문 시리즈다. 에크리란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그/그녀가 무엇을) ‘쓰다’라는 뜻이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새로운 산문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시리즈명은 문지 에크리로서, 총 5권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중 내가 읽은 책은 이광호 저자의 《너는 우연한 고양이》. 이광호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고양이가 되기 위한, 고양이가 되려 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의 그러한 고양이化를 위한 욕구를 잘 담아낸 책이다. 140쪽 내외의 얇은 책인데 자꾸 곱씹고 다시 읽게끔 만드는 매력적인 책.

《너는 우연한 고양이》, 이 책은 굉장히 시적이다. 산문의 사전적 정의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글모음 집이라고 하면 되는건가. 사전에선 산문을 '율격과 같은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글' 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책은 줄글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하다. 줄글마저 시적인 표현을 하고 있어서 자꾸 곱씹게 된다. 1장에서는 고양이를 '너'로, 3장에서는 화자 자신을 '너'로 표현하며 같은 인칭대명사 아래에서 저자의 생각을 외롭고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작가의 글이나 문체 자체가 따뜻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희한하게 글을 읽다보면 그 속에서 '보리'와 '일다'를 향한 그의 마음이 드러나는것이, 참 신기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자꾸 우리 바다와 애기들이 떠올랐는데, 하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 책에서 본인의 고양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근데 그럼에도, 더더욱 바다와 소리와 그레이와 미니쪼리가 생각난 이유는 아마 책 속에서 보리가 지니고 있다고 하는 선천성 심장 증후군 때문이리라. 우리 아가들의 품종인 랙돌은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있다고 한다. 랙돌 뿐만이 아니라 대형묘의 경우 HCM - 비대성 심근증에 많이 걸린다고 하여 우리 집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상태. 아직 정식으로 심장병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언제든 심각한 상황으로 발발할 수도 있는 심장 질환이라.. 돌연사의 위험도 있을 뿐더러 심장 질환이다 보니 합병증도 생길 수 있다. 그 두려움 앞에서 '보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네가 몸에 많이 머무는 시간은 어깨에 올라가 집안을 어슬렁 거릴 때이다. 너는 마치 이제야 적절한 시선의 위치를 찾았다는 듯이 동거인의 어깨 위에서 집 안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리며 내려다본다 (40p)' 구절에서도 아이들이 생각났다.

랙돌이 랙돌인 이유는, Ragdoll, 말 그대로 축 늘어져있는 인형 같다고 해서 랙돌이다. 보통 고양이들은 사람의 품에 안기는 것을 싫어하는데 랙돌은 얌전히 안겨있기도 하거니와, 특히 어깨에 걸치면 정말 얌전히 있기 때문. 근데 왤케 포스팅을 쓰는데 점점 아련해지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가들을 생각하면 너무 좋다가도 괜히 심장병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가장 인상에 남았던 글은 '우정'. 고양이와 고양이,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있음'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순간을 묘사하는 방식이 참 아름웠다. 고양이의 촉촉한 코에 얼굴을 갖다 댈 수 있게 허락해줄 때, 그 순간 촉촉하고 약간 차갑고 부드러운 콧등이 아무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우정의 감각을 선물한다는 그 문구. 참으로 동감되고 아름답다. 알함브라 궁전 글도 너무 아름답다. 알함브라에서 만난 그 고양이가 14세기의 흙먼지를 밟고 있다는 그 발상 자체가 놀라웠다.

《너는 우연한 고양이》 는 고양이 보리와, 고양이 일다를 사랑하는 고양이(가 되고픈) 집사가 쓴 조각글 모음집,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동감하며, 감동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분위기가 너무 예쁘다. 고양이 세계와 집사 세계의 중간계에서 써내려간 몽환적인 고양이 산문집.

다 읽고 나니 (사실 한번 더 읽었다) 문지 에크리의 다른 책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지 묘하게 궁금해진다. 또한 저자인 이광호 작가님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그의 원래 색채가 어떤 모습인지 저자에 대한 궁금증까지 담아내는 책.

호오. 책 하나 참 매력적이다.이광호 작가님 글 진짜 잘쓰신다. 나도 우리 고양이들을 향한 사랑을 이렇게 감각적이고 시적이게 표현하고 싶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