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콘서트
김승욱 지음 / 법문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다문화 콘서트

 

 다문화의 범주는 넓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우리 사이를 다문화라 말하고,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여러 나라(대륙)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다문화이다. 또한 굳이 사람이 섞이지 않더라도 문화컨텐츠, 유행, 전자제품 등으로도 다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글로벌한 요즘 시대에 다문화가 공존하지 않는 분야는 없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다문화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내가(혹은 우리가) 사는 곳에 거주하며 같이 사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우리가 외국으로 나가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어쨌든 다른나라의 사람과 같이 어울려 사는 것 자체를 다문화사회로 인식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나라가 다르고 생김새의 특징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경계한다. 역사적으로 수백년동안 외세의 침입에 시달려왔던(?)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할지 모르겠으나, 유독 우리나라에 그런 보편적 인식이 흔한 것 같다. 특히나 백인들에 비해 흑인, 혹은 다른 아시아권 나라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매우 심하다. 하지만 이 차별이 매우 심각한 이유는, 단순한 다문화적 차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낮춰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한때 저개발국이라는 이유로 업신여김받던 세월을 기억 못하고, 우리가 당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해내고 있다.

 

다문화 콘서트 속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연주를 한 지휘자는 오바마였다. 흑인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이유는 흑인으로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 보다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 특히 아버지를 용서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가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는 인생만 살았더라면 결코 대통령이 되는 명예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기 이전에 그는 이미 내면적인 성인이 되어있었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를 내면적 성장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오바마의 넬라판타지아가 사막속의 오아시스처럼 기적을 연상케 했다면, 맨유의 성공비밀은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마케팅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왜 오바마에 대한 찬사만 늘어놓느냐 반문한다면 나는 맨유보다 오바마의 이야기에 더 감명을 받았으며, 오바마는 사회적으로 다문화 편견을 극복한 사람이지만 맨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문화를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맨유가 다문화 경영을 통해 성공을 이룩하였고 다문화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부분은 매우 크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인 이득’,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기업경영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스날이 박주영을 영입한 것도 사실은 영입이 아닌 고용이었듯이 세계 축구 클럽에서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단순히 팀 전력 강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 사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맨유의 다문화 경영은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서도 비슷하게 활용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국내 공장들에서 영입(스카우트)하고, 그들에게 돈을 지불한다.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뛴 만큼 돈이 나가고, 도중에 부상을 당하면 주전자리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벤치멤버를 맴돌다가(치료비도 못받다가) 결국 기존의 연봉협상도 결렬되어 고국으로 방출된다.

 

 위와 같은 내용은 다소 극단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지만, 실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라 마음이 아프다. 이 책에서도 다문화 이주민들의 긍정적인 모습들, 극복해야 할 국내 이주민들의 문제-아픔들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인식변화인데, 외국인 범죄가 심각하다는 이유와 그들과 섞이기 싫다는 이유 등으로 다문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해외에 나가서 다문화를 이루는 것은 전혀 게의치 않는다. 그야말로 자기 중심적인 사고이다. 우리가 아무리 외국인들과 어울리기 싫어도 시대의 흐름이 다문화를 요구하고 있고 저임금 노동인력으로 공장을 이끌어 생산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의 힘을 빌려야 한다. 무작정 다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이 정지할 수 밖에 없다. 다문화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왕 받아들여야 하는 거 무덤덤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책에서도 콘서트, 즉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키며 다문화를 언급한 것도 이때문이 아닐까. 교향곡 한 곡을 연주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악기를 통해 호흡을 맞춘다. 그 악기들은 생김새, 소리가 전부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어우러져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우리도 다른소리만 내지 말고 그들과 함께 훌륭한 교향곡을 연주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빨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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