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75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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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극 한편을 본 기분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은 이야기 흐름에서 주인공의 심리, 행동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런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에 공감하기도 비판하기도 하면서 감동을 이끌어낸다.

근데 이 소설은 마치 작가가 '난 이런 연극을 할거야 그 영상미를 충분히 즐겨봐~ 그리고 난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테니, 인물들의 속사정은 너가 잘 추측해봐~' 라고 말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 이야기의 흐름은 볼란드가 이반 시인과 편집장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 만남을 통해서는 볼란드가 그런 무시무시한 악마일 거라고는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 이후 편집장은 잔인한 죽음을 맞이하고 이반 시인은 이를 알리려다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볼란드는 아자젤로, 고양이 등 수행원은 인간세상에서 속세에 물들어 부패한 사람들을 벌하거나 죽인다. 뿐만 아니라 흑마술을 열어 돈의 가치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혼내준다.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상 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혼을 내준 사람들이 이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바르게 살아간다거나 자신이 벌을 받은 이유를 알게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점 역시 여느 소설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볼란드가 나중에 잡아간 사람들을 되돌려 놓는다. 이런 전개는 심리 묘사를 최대한 절제한 담담한 문체의 소설의 특징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이와는 전혀 결이 다르다. 그리고 중간중간 고대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거장의 소설 내용도 등장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종교적 관점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마르가리따라는 여인을 사탄의 무도회에 여주인으로 초대하고 그 초대에 응한 보상으로 그녀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준다. 이로 인해 마르가리따는 연인인 거장과 재회하게되고 이후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내가 느낀 세가지 주제는 돈, 종교, 사랑이다. 거장와 마르가리따 이야기에서 마르가리따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사탄의 등장, 고대 예루살렘 이야기를 통해 종교적 관념이 드러나고 흑마술과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과정에서 부패한 권력자들, 일반인들이 등장한다. 이 세가지를 말하고 싶었던것 같다. 다만 이러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자에게 자신의 관점을 설득하거나 수긍하게 만들지 않는다. 물론 마르가리따에 대해서는 볼란드의 관대함이 느껴졌지만 그외에는 딱히 독자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기분이 든다. 독자와 적절한 거리감이 아닌, 아주 먼거리에 있는 소설이다.

가장 크게 특이할만한 것은 장면장면의 생생한 묘사와 급작스런 무대 전환이다. 이를 통해 마치 내가 그 장면 안에 있는 느낌을 준다. 특히 마르가리따에게 소원에 대해 말하라고 할때, 언급하는 것 마다 바로바로 눈 앞에 펼쳐놓는 모습이 위트있게 느껴졌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등의 쇼가 나오는 장면 처럼 다소 우스꽝스럽게 바뀌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이를 언어로 풀어내다니 작가가 진정 거장 답게 느껴졌다. 또한 각 등장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추측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이기 때문에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다. 이러한 소설의 성격과 표지 앞의 작가가 담배를 물고 있는 시크해 보이는 이미지와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 그런것일까..


보통 소설 앞에 등장인물 리스트 설명은 좀처럼 잘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설에 빠져서 이해하기 전까진 그 리스트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리스트를 염두하면 이야기 흐름을 전혀 모르고 봐야 재미있는 소설의 특성상 감명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반드시 참고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 유사한 긴긴 이름들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그때그때 그 이름들 조차 다르게 불린다. 이런 점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책 앞부분에 등장 인물 이름과 함께 간단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어 더 재미있게 소설을 읽어 나갈 수 있다.

소설의 상세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거장과 마르가리따라는 분명 주인공은 맞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서 뭔가 중요한 역할이나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딱히 노력도 하지 않는다. 마르가리따와의 재회를 위한 거장의 노력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소설에 대한 환멸로 마치 자신의 애인에게 항상 위로받는 존재로 느껴진다. 반면 그를 사랑하는 마르가리따에게는 매우 관대한 입장을 보인다. 아자젤로가 처음에 그녀를 만나러갔을때, 지금까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벌을 줬던 행태와는 완전히 다른, 심지어는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다. 앞의 벌을 받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가 없어서 인지 과연 그녀는 완전 무결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가리따는 유부녀였고, 남편을 두고 거장을 사랑한것이다. 물론 그 사랑이 진정한 것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 남편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그녀 역시 완전 무결한 영혼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이런 부분의 이야기 전개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딱히 원인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이야기 흐름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작가의 활동 당시 희곡을 다수 집필했던 이력으로 미루어 이 소설에도 그러한 극적인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점이 이 소설만이 가진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미려한 문체의 소설들이나 장르 문학들에 다소 피로감이 있어 독특한 작품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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