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 매니아 군단을 형성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주인공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면서 사변적 어투와 방대한 지적 사유로 완전히 묶어버린다. 소델리니와 니콜로의 사랑이 주된 내용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적 암투가 이들의 사랑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당시의 과학적 진전과 생활 등이 설명되고 있다. 물론 만화라는 허구적 산물에 철저한 과학적 역사적 고증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상당히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정애의 만화에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긴 설명과 사유에 대한 해석이 다소 상세하게 쓰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만화에는 소설을 방불케 하는 상당한 분량의 글이 그림 위로 넘쳐나고 있다.이 작품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세심하게 독해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한 편의 외화를 보듯 대사와 설명을 읽기 위해 그림을 지나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넘쳐나고 있는 방대한 분량을 읽어내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작품이 주는 색다른 사유의 낯섬에 매혹되어 읽는 수고를 기꺼이 즐긴다.이정애의 작품은 동성애의 편견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순리적 질서를 옹호하고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추구되는 이성애에 대해 과감하게 본질적인 도전을 감행한다. 아무런 의심이나 생각없이 당연시 여기는 이분법적 편견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포괄적이고 무조건적 단어가 인습과 편견에 의해 고착화 되고 있음에 항거하여 성과 성을 넘어선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다소 낯선 사고는 우리를 매혹시킴과 동시에 높으신 어른의 비난 대상으로 전락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정애식 만화에서 보여지는 강한 개성은 바로 철저하게 읽는 만화라는데 있다. 이런 만화는 꾸준히 보지 않으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장면 하나하나, 어휘 하나하나가 이해를 돕는 인자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시간을 투자해 해석해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렇게 수고하지 않으면 만화를 읽어낼 수 없고 재미도 찾을 수 없다.지금의 순정만화는 분명 보기를 요구하지 않고 사유를 요구한다. 아무 생각없이 심심풀이로 만화를 보고 뒷장으로 넘긴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다양성과 방대함이 이 시대의 기류이고 이에 맞춰 만화는 단순 무식하고 지저분한 웃음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대신 상당한 지적수준과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읽게 한다. 물론 절제와 함께. 그것이 예술로서의 만화가 지닌 새로운 기능이며 만화 읽기의 즐거움이다.